삼엄한 경비…곳곳서 충돌|7만 경찰 배치…상가철시·직장휴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민당 서울개헌대회 장소인 구 서울고를 중심으로 한 광화문·종로일대에서는 7만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29일 낮부터 광화문·종묘·파고다공원·신민당사 주변 등 곳곳에서 시위하는 신민당원·학생들과 경찰이 충돌, 최루탄 세례가 잇달았다.
경찰은 시위현장과 검문검색과정에서 신민당원·대학생·종교인 6백여 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이영창 서울시경국장 지휘로 상오7시30분 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1km지점에 병력을 배치, 신민당중앙당사를 비롯, 서대문·광화문·종로·신민당사주변 등 예상진입로와 파고다공원·종묘·서대문로터리 등 집결지에 삼엄한 경계를 폈으며 구 서울고 구내를 폐쇄, 출입을 금지시켰다.
「2930」으로 이름 붙인 대회저지작전을 위해 경찰은 구 서울고 주변에만 방사선형도로를 따라 모두 80개 중대 1만2천여 명을 집중 배치했으며 상오11시쯤부터 차량과 행인의 접근을 막았다.
◇광화문 시위=상오 11시50분쯤 구 서울고 앞 건너편 인왕다방 앞길에서 단국대생 백성철군(20·행정2) 등 대학생·시민 70명이 반정부구호를 외치며 육교를 건너 대회장소인 구 서울고 쪽으로 진입하려다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
곧이어 상오11시55분쯤 경찰은 광화문버스정류장을 모두 폐쇄했고 고려병원에서 교육회관까지의 인도를 폐쇄했다.
정오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회관 입구 쪽에 모여 있던 대학생·시민 1백여 명이 반정부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차단을 항의하자 경찰은 최루탄 10여 발을 쏘며 해산시켰으며 낮12시30분까지 광화문주변에서는 30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키는 바람에 인적이 거의 끊겼다.
◇서울극장 앞=29일 하오1시30분쯤 종로3가 서울극장 앞 도로에서 학생 등 3백여 명이 10여 종류의 유인물 1만여 장을 뿌리며 시위를 벌이다 10여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학생들은 서울극장 근처 골목길에 모여서 있다가 단성사 앞 네거리에서 일부학생들이 차도로 뛰어들며 「군부독재타도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차도로 뛰어나와 「미제축출하고 예속파쇼 타도하여 민중민주주의 쟁취하자(영구집권음모분쇄 민중투쟁전선 명의)」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제헌의회소집노동자 투쟁위원회명의)」 등의 유인물을 뿌리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단성사와 파고다공원근처에 대기 중이던 경찰이 출동, 최루탄을 쏘자 이에 맞서 화염병과 돌등을 던지며 맞서다 10여분만에 청계천 쪽으로 흩어졌다.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학생 등 19명을 연행했다.
◇종묘 앞=신민당 국회의원과 당원들은 상오11시10분쯤 이재량 의원을 선두로 국회의원1∼2명씩 조를 이뤄 당원 10여명씩과 함께 걸어서 제3조의 1차 집결장소인 종묘 앞으로 집결했다.
상오11시30분쯤 이철·박실·송현섭·김태룡·정상구·김동욱·이영근·조순형·박한상·신도환의원 등 국회 교체·문공·건설·외무위 소속 의원과 당원 1백50여명이 종묘 앞 보도에 몰려들자 동대문서 임지상 서장은 구두로 『더 이상 못 가니 돌아가 달라』고 해산을 종용했으나 의원과 당원들은 이에 불응, 정·사복 2개 중대 2백40명과 의원·당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시작됐다.
경찰은 의원·당원들을 종선 건너편 세운상가 쪽으로 밀어붙이려 했으나 이들이 완강하게 저항하자 상오11시50분쯤 사과탄 30개를 던져 강제 해산시켰다.
사과탄이 터지자 의원들은 당사 쪽으로 후퇴하거나 부근 다방으로 피신했다.
◇파고다공원 앞=정오쯤 이기택·김동영·박용만·김옥선의원 등 신민의원 10여명과 당원 등 1백여 명이 공원정문 앞에 모여 있다가 15분만에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서대문로터리=상오 11시45분쯤 서울 평동219 박영빌딩 앞 서대문로터리에서 신민당 김재광의원 등과 당원2백여 명이 승용차 편으로 행사장인 구 서울고 쪽으로 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심한 몸싸움 끝에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