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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공자마저도 범부와 다르지 않다”…유불도 합일 주장한 급진 유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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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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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
이지 지음
김혜경 옮김, 한길사
344쪽, 2만5000원

공자가 주창한 유교(儒敎)는 본래 인간의 완성을 지향했다. 신유학(新儒學)으로도 불리는 주자학 시대에 이르러 과거시험 과목이 되면서 유교는 성공의 수단으로 더 활용됐다. 뜻있는 지식인들이 유교의 타락을 비판했지만 명나라 말기 이지(李贄·1527~1602)만큼 열정적인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탁오(卓吾)라는 호로 더 알려진 그는 주자학이 극성했던 시대에 유교를 앞세운 위정자와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맹렬히 비판하다 투옥돼 감옥에서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54세까지는 주자학을 공부하고 벼슬을 하면서 살았다. 양명학과 불교를 접하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고 한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라고까지 스스로 혹평했다. 주자학을 비판한 학파인 양명학에서도 급진좌파라는 타이틀이 흔히 따라 붙지만 그는 그런 구분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집일(執一)’, 즉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62세에 머리를 깎고 승려생활을 하고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배움은 하나”(儒釋道之學, 一也)라고 하였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도 교류하며 기독교까지 섭렵했다.

‘등불 밝히고 옛일을 논한다’는 뜻의 『명등도고록』은 1597년 출간된 그의 말년 저작이다. 『대학』과 『중용』을 중심으로 유교 철학의 핵심을 해설했다. 그의 지인이 묻고 이탁오가 답하는 형식이다. 출가를 하고 유불도 삼교 합일을 주장한 그가 결국 유학자라는 점을 확인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분서(焚書)』 『속분서(續焚書)』의 역자가 이번에도 번역을 맡았다.

공자마저 범부와 다르지 않다며 비판하는 그였기에 유교문화권에서 20세기 중반까지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이탁오. 그런 이단아가 400여 년 세월이 흘러 유교의 진면목을 구현한 사상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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