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다운 정치의 갈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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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국은 자꾸 막다른 골목으로만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돌파구를 찾는 선택의 폭은 더욱 더 좁아질 것 같다. 정국 타개를 위한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 질수록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
정치인들은 그런 현실을 훤히 내다보면서도 「입장 고수」에만 급급하고 있다. 말도 많고, 명분도 많지만 정국을 풀어 가는 실속이 없다. 그야말로 공전과 답보의 연속이다.
요즘 정계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 신민당의 「서울 대회」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의 말대로 야당 정치인들을 집안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고 대회장 주변도 차단해 대회 자체가 열리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야당은 가만히 앉아서 그런 것을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경 옥신각신이 있고 더러는 「몸싸움」도 일어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런 광경들은 미리 상상해 보고 싶지도 않다. 이제까지 한두번 보아온 일도 아니고 줄곧 우리 나라의 정치판이 그래 왔다.
국민들은 그런 악순환과 비생산적 시비가 한심하고 답답해 보일 뿐이다.
야당은 현행 헌법의 조문까지 들이대며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 쪽은 교통 소통 지장, 시민 생활 지장, 사회 불안 야기를 내세워 서울 대회를 한사코 막을 작정이다.
벌써 서울 변두리 인쇄소에서 『모이자!』라는 야당의 격문 인쇄물이 압수되고, 대회장 차단 작전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야당은 야당대로 무슨 대항책을 강구할 것이다.
이쯤 되면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싸움에서 이기는 작전이다. 그런 정치를 믿거라 하고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가.
사실 신민당의 서울 대회는 못 열려도 문제고, 열려도 문제다.
정부의 완강한 차단 작전에 의해 서울 대회가 무산되면 정국은 그것으로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신민당은 그것을 정략으로 삼아 더욱 거센 숨을 몰아 쉴 것이다. 신민당의 정치 에너지를 연소시켜주지 않은 상대에서 정국이 술술 풀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울 대회가 열린다면 그 상황도 문제다. 5·3 인천 사태도 처음엔 신민당 스스로도 자제를 당부하고 젊은 당원들까지 나서서 그런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혼란과 난동을 빚고 말았다.
29일 서울 대회가 예정된 곳은 도심의 심장부다. 군중은 본래가 흥분하기 쉽고 작은 자극에도 얼른 동요한다. 야당의 정치 집회에 그런 흥분과 자극이 없을 수 없다. 만의 하나라도 도심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주의의 건물들이 불타고 난리법석이 벌어지면 그것이 무엇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우리의 시국은 그 동안 불만과 불안과 우수를 해소해 주는 쪽보다는 그것이 쌓이고 쌓이는 목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런 형국에선 어떤 사태도 낙관을 불허한다.
사실 국민들은 신민당의 서울 대회를 놓고 가타부타 하기에 앞서 정국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정치인들의 아집과 독선과 무능을 개탄하고 힐책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기회와 시간은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노력과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헌법을 바로 잡아 더 나은 민주주의를 하자는 마당인데 그보다 우선하는 명분이 어디 있고, 그보다 최선이 어디 있는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절충과 타협의 정치엔 한계가 없다.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갈망하는 것은 결코 남의 나라 얘기일 수가 없다.
여야 절충과 타협, 진부한 당부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보다 신선한 제안도 없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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