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도 예산 내용 좀 알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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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 시·도의 내년도 예산이 한창 편성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1조원이 넘는 일반 회계 예산을 포함, 모두 2조9백여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1천만 서울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쓰여지는 일반 회계 예산만 놓고 보아도 시민 한사람이 무는 시세는 대충 8만원 꼴이다.
5인 가족을 부양하는 세대주 입장에서는 연간 4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결코 적은 액수 랄 수 없다. 세금을 거둬 쓰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세수입을 올려 다리도 놓고, 도로도 트고,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고 싶겠지만 시민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지금의 시 예산 편성 절차를 보면 시민은 다만 알뜰하게 써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알뜰하게 쓴다는 것은 예산 집행에 조그마한 누수도 없도록 성실히 해달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보다 효과 있게 집행 해 달라는 요구도 들어 있다. 「살기 좋은 도시」 쾌적한 마을을 꾸미는데 무엇이 더 급하고, 서울의 장래를 위해 어느 사업이 긴요하고 효율성이 높은가를 심사숙고해 공정하게 예산을 짜달라는 것이다.
정부 전체 예산의 7분의 1을, 서울을 제외한 전국 시·도 예산의 절반 가까이 되는 방대한 예산을 공무원 몇몇이 편성하고 감사하고 있어 온당하게 집행되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시민들로서는 이 같은 요청이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시정 자문 회의와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기회가 아직도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서울시가 편성, 발표한 내년도 사업 계획을 보면 정책의 우선 순위가 뒤바뀐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정 자문회의와 시민들의 의견 청취가 형식적 보고에 형식적 승인에 그쳐 요식 행위에 불과 하다는 비난이 있어온 만큼 앞으로 얼마만큼 손질이 가해질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새해 예산의 특징은 대규모 신규 투자 사업은 거의 없고 시민 복지와 도시 환경 개선, 88올림픽을 대비한 도시 정비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물론 도시 정비, 도시 환경 개선 사업의 중요성이나 시급함은 익히 알고 있다. 더구나 88년의 큰 행사를 앞두고 서울의 면모를 깨끗이 하겠다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교통의 폭주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기본 뼈대를 바로잡고 보완하는 도시 골격 사업은 내버려 두어도 되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규모 사업은 당장 시작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사업이 아니다.
5년, 또는 10년 후의 서울을 내다보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사업 이어서 당장은 시급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르고 시민들의 관심이나 인기를 모으기도 어렵다. 그러나 정작 서둘러야 할 사업은 이 같은 비 인기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차량이 이제 겨우 50만 대를 넘어섰는데 도로는 어딜 가나 초만원으로 북적거리고 있다.
매일 5백대 이상이 새로 출고되는 자동차 증가 추세로 보아 도로율이 15%에 불과한 서울이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서울시가 선거의 해를 맞아 주민들의 왕성한 요구나 지역 사정을 전혀 외면해 버릴 수 없는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인기 사업에 지나치게 치우친다면 정책의 우선을 경시한 절름발이 예산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 할 것이다.
올림픽 사업도 국가 사업인 만큼 사업의 성격상 정부 예산으로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지난번 아시안 게임 때도 말썽이 되었지만 멀쩡한 보도 블록을 깨부수고 새로 깔았던 것과 유사한 예산 낭비는 더 이상 없어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정 자문회의 심의에 기대가 크고 시민들에게 예산은 물론 결산까지도 공개해 말 그대로 실효를 거두는 제도의 실시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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