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디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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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 사람들은 사기업을 「거디후」라고 한다. 한자로는 개체호. 문자 그대로 개인이 주체가 되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1978년 등소평이 실권자가 되고 나서 「거디후」 정책이 구상되었다.
82년 중공은 헌법으로 그 「거디후」를 명문화했다. 요즘은 소련도 뒤늦게 연방 최고 회의에서 사기업을 허용하는 결의를 했다. 공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사산」 유행이다.
그러나 20일자 미국 경제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지 (아시아 판)는 1면 머리기사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중공에서 「거디후」가 잘 안 되는 이유를 현지 르포로 보도했다.
미스 「후」라는 중공의 한 또순이 아가씨는 의류 도매상을 시작했다가 그만 문을 닫아 버렸다. 이런 일은 「후」양의 경우만은 아니고 중공의 모든 사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공엔 지금 사기업이 무려 1천4백만개나 있는데 지난 6월말 그 가운데 3%가 줄었다. 상해에 있는 8만4천개의 사기업들도 1년 사이에 7만6천개로 감소되었다. 1할이 없어진 셈이다.
한때 연 57%씩 늘어나던 사기업이 무슨 일로 이처럼 무너지고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지가 분석한 이유들이 흥미 있다.
첫째는 이념 (이데올로기)이다. 30년을 두고 『자본주의의 꽁지』라고 비난받아 온 사기업이 하루아침에 주인 행세를 하기는 어려운가보다. 한 사회가 제복을 벗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둘째는 관리의 횡포. 『우리는 기껏해야 월 70∼80원을 받는데 사기업주들은 하루에도 2백원을 거뜬히 버니 말도 안 된다』이런 식이다. 관리들은 심술이라도 부리듯 간섭을 많이 한다.
파일을 파는 어느 상인은 벌금을 물었다.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했다는 구실이다. 물론 공영 과일상은 그런 일이 없다.
세째는 원자재와 자금난이다. 괜찮은 옷가게 하나 차리려면 1만 몇천 달러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돈을 구할데가 없다. 옷을 만들 옷감이나 에너지 또한 마찬가지다. 가게를 차릴 집이나 토지도 마땅치 않다.
네째는 세금의 과중한 부담이다. 사기업은 소득 정도에 따라 7%에서 60%의 소득세를 물어야 하고 거기에 얹어서 1%의 교육세, 2%의 행정세도 낸다.
『인민의 일상 용품을 해결해 주고 일자리를 제공하며 사회 생산을 늘려 가는 역할에 있어서 다른 무엇과도 바꿔놓을 수 없는 사기업』, 중공의 당 교서는 이렇게 고무, 격려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어느 사회나 체제 자체가 자유스럽지 않고는 사기업이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소련의 사기업도 분명히 예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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