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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평온 깬 80대 노인 살인 사건…주민 30명 조사하고도 6개월째 미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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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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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남 완도군 금일읍 평일도 사동리 경로당 입구 출입문에 노인 살인사건에 대한 제보를 요청하는 전단이 빛바랜 채 부착돼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17일 오전 전남 완도군 금일읍 평일도 일정항. 여객선 매표소 입구 유리문에 ‘80대 노인 사망 관련 신고·제보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전단이 붙어 있었다. A4용지 크기의 흰색 바탕 전단은 오래전 부착된 듯 누렇게 변색한 상태였다. 주민 권모(77)씨는 “살인사건이 난 후 경찰이 수시로 섬을 드나들었는데도 아직까지 범인을 잡지 못해 주민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80대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유력 용의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
“여자문제” “외국인 살해” 추측 난무
경찰 “면식범 우발적” 잠정 결론
수사 인력 추가에도 미제 가능성

‘평화로운 섬’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조용했던 평일도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은 5개월 전이다. 사동리 주민 김모(80)씨는 지난 5월 16일 오후 5시10분쯤 자신의 집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에 피를 흘린 상태로 쓰러져 있던 시신 주변에는 피 묻은 아령이 놓여 있었다. 김씨는 부인과 사별한 뒤 홀로 이 집에서 생활해 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김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뇌 손상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누군가 김씨의 집에 찾아와 말다툼을 하다가 집 안에 있던 아령으로 내리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도 벌였다.

수사 초기만 해도 사건은 쉽게 풀리는 듯했다. 경찰이 사건 발생 사흘 만인 5월 19일 같은 마을의 70대 노인 A씨를 긴급체포하면 서다. 경찰은 사건 당일 A씨의 행적에 의문점이 있는 데다 무엇인가 숨기는 듯한 행동을 보이자 긴급체포 후 집중 조사했다. 하지만 김씨를 살해한 증거는 물론이고 범행 동기도 파악되지 않아 A씨는 풀려났다.

경찰은 김씨의 집에서 수거한 증거물 200여 점에 대한 분석도 했지만 용의자의 흔적은 없었다. 안방에 있던 옷가지를 비롯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조사했지만 지문이나 족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씨가 사는 마을에 폐쇄회로TV(CCTV)가 단 한 대도 없는 점도 수사를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

수사가 장기화되자 경찰은 원래 6명이던 수사팀에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경찰관 1명을 보강했다. 이후 섬을 수시로 드나들며 숨진 김씨와 주변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30명 안팎의 주민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여자 문제로 갈등을 겪던 이웃이 살해한 것 같다” “봄철 다시마 작업을 하러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소행인 것 같다” 등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경찰은 김씨가 사망한 시간대를 5월 16일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2시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수사 초기 용의선상에 오른 A씨는 “오후 2시쯤 작물 모종을 가지러 김씨 집에 가서 이름을 불렀는데 나오지 않자 마당에서 모종만 들고왔다”고 진술했다.

사망 경위는 외부인이 아닌 주민 등 면식범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사건 현장에 김씨가 저항을 하거나 누군가 방을 뒤진 흔적이 없는 데다 금품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 5개월이 넘도록 용의자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면서 미제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2010년 목포 여대생 강간살인 사건에 이어 또다시 미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완도경찰서 관계자는 “다양한 수사기법을 활용해 용의자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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