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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 맛 햄, 마늘 맛 소시지 100g만 사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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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 육가공품 맛보고 구매하는 매장 확산

홈술·홈파티가 트렌드가 되면서 집에서도 고급 안주로 분위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와인 안주로 사랑받는 하몽 뿐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와 잘 어울리는 살라미·학센(독일식 족발) 등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품을 일반 매장에서 구하려면 진공 포장된 수입산 정도밖에 없다. 햄·소시지만 해도 맛에서 대동소이한 대량유통제품 일색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육가공품을 다채롭게 취급하는 ‘육가공품 그로서란트’가 늘고 있다. 그로서란트란 식료품점(Grocery)과 음식점(Restaurant) 두 단어를 조합한 말로 음식을 먹는 식당과 장보기를 할 수 있는 숍이 합쳐진 복합식품매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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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소시지 등 신선 육가공품을 주문해서 바로 먹을 수도 있고 소량으로 구매해서 집에서 포장해갈 수도 있는 레스토랑형 매장이 늘고 있다. 5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이는 ‘어반 나이프’.

주부 오승연(34)씨는 요즘 주말에 홈 브런치 메뉴로 ‘모타델라 샌드위치’를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이탈리아 햄의 일종인 모타델라는 차가운 상태 그대로 먹는 콜드컷(Cold Cut)인데, 아직 국내 수요가 많지 않아 일반 식품매장에서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오씨가 종종 가는 ‘존 쿡 델리미트(이하 ‘존 쿡’)’ 압구정점에선 여기서 직접 만든 모타델라를 g단위로 잘라서 판다. 오씨는 “원하는 제품을 소량으로 살 수 있는데다 어떤 요리를 하면 좋을지 매장 메뉴를 통해 힌트도 얻을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일반 식음매장에서 육가공제품 등을 소포장해서 파는 곳을 통칭해 ‘육가공 그로서란트’ 혹은 ‘육가공 델리숍’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은 기성품보다 유통기한이 짧은 반면(진공 패킹 후 7~15일) 신선하고 맛도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곳은 ‘존 쿡’의 분당 정자·압구정·광교·경리단점 등 4개 지점, SPC그룹 소속 삼립식품이 운영하는 자회사 ‘그릭슈바인’ 양재·강남스퀘어·서울역·여의도·판교점 등 5개 지점, 수제 육가공 전문업체 대경햄의 자회사 브랜드인 ‘어반나이프’(광진구 구의동), 진주햄이 설립한 프리미엄 라인 ‘육공방’의 서래마을 안테나숍 ‘공방’ 등이다. 대부분이 식사와 주류를 겸할 수 있는 펍&레스토랑 형태로 꾸며 고객이 편하게 외식하며 경험할 수 있게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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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나이프’의 대표 메뉴인 ‘골드컷 플래터’.

이들 매장에선 국산 돈육을 바탕으로 이름만 들어도 이색적인 각종 육가공품을 판다. 예컨대 ‘어반 나이프’에선 초리조 돈장살라미·비어슁켄·파프리카리오나 등 50여가지 햄과 소시지를 판다. ‘그릭슈바인’에서도 취급하는 소시지가 바이스부어스트·갈릭소시지·브랏부어스트클래식 등으로 다양하다. 진주햄이 운영하는 ‘공방’에선 가열·훈연 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소시지가 시그니처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소시지에 비해 20~30% 비싸지만 신선도와 맛 때문에 재구매율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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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쿡 델리미트’ 압구정점에서 육가공품을 제조·보존하는 ‘콜드 팩토리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매장은 ‘선(先)경험 후(後)구매’를 할 수 있어 유용하다. 홈파티 메뉴를 위해 ‘어반 나이프’에 들른 회사원 임시원(31)씨는 “원래 슈바인학센(독일식 족발요리)은 좀 짠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서 파는 건 염도를 한국인 입맛에 맞춰서인지 덜 짜기 때문에 손님 접대용으로 괜찮은 듯하다”고 말했다. ‘어반 나이프’는 현재 신세계·롯데 등 백화점에도 매장으로 입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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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 등 콜드컷 제품은 원하는 두께로 잘라준다.

육가공품이 국내 그로서란트에서 팔리게 된 것은 2013년 말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에 따라서다. 그 전까진 정육점 등에서 도축된 1차 축산물, 즉 소고기·돼지고기 등만 취급해야 했지만 법 개정에 따라 2차 가공품을 ‘소분(小分)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국내에는 독일의 ‘메츠거라이’처럼 제조·유통 능력을 갖춘 정육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존 햄·소시지 제조업체가 매장을 차려 파는 형태로 나타났다.

매장 직제조품을 파는 곳은 ‘어반나이프’와 ‘존 쿡’ 압구정점 정도이고 나머지는 중앙 공장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한 제품을 들여와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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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릭슈바인’에서 파는 제품들. 소시지부터 파스트라미까지 다양하다.

이들 업체가 이런 매장 설립에 나선 것은 신선 육가공품 시장이 계속 확산될 거라 보기 때문이다. 주로 뷔페 레스토랑 등에 제품을 납품해왔던 대경햄의 경우 프리미엄제품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생각에 수년 전부터 독일 업체 등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유호식 사장은 “1984년쯤 압구정 현대 맞은 편에 ‘코델리’라는 델리숍을 열었는데 당시 법규에 어긋나서 얼마 안 가 문 닫아야했다”면서 “6~7년 전부터 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와서 지금도 계속 신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2013년 법 개정과 거의 동시에 영업을 시작한 ‘어반 나이프’는 1~3층을 테이크아웃 매장과 펍&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신선 육가공품은 샌드위치 등 2차 상품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존 쿡’은 자체 개발한 비프 파스트라미·터키 브레스트 등 육가공품을 바탕으로 샌드위치 전문매장 ‘샌드위밋’을 선보인 뒤 최근 파르나스점까지 3호점을 열었다. 삼립식품이 ‘그릭슈바인’을 통해 프리미엄 육제품 시장에 진출한 것도 빵에 끼워먹는 햄 하나도 허투루 사지 않는 고객 취향을 겨냥해서다. 장승훈 SPC그룹 홍보부장은 “1인 가구에 맞춰 간편식품 수요가 늘면서 빵과 신선육을 결합해 한끼를 대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소시지만 봐도 갈릭·허브·커리 향 등을 따지는 추세라 앞으로 제품이 더욱 세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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