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자산확보에 열올리는 일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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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엔화강세를 배경으로 일본의 기업들이 미국내 자산을 확보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기업의 합병·인수나, 또는 현지공장설립등이 붐을 이루고 대규모 부동산이나 미재무성발행의 장기채권 매입도 크게 늘고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여유자금이 남아도는데다 엔화 강세에 따라 구매력은 훨씬더 커졌다. 더우기 일본내에는 마땅한 투자대상이 한정돼 있고 미국의 압력으로 금리도 전후 최저인 3% (재할인율) 수준까지 떨어져 해외 투자붐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과거의 야금야금 파들어오던 자세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일본의 투자전문가는 10월말께 후지쓰가 페어차일드세미컨덕터사의 주식 80%를 약2억2천5백만달러에 사겠다는 제의를 한것이 대형매수의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흐름의 폭이 얼마나 클것인가 하는 것이다.
엔화 강세는 일본기업의 자금력을 높여줬을 뿐아니라 수출에 있어 가격 경잭력의 열세를 초래, 이를 만회하기 의한 현지투자, 또는 기업 변신의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장기 불황으로 고전하던 일본철강업계의 가와사키제철과 미쓰비시금속은 각각 캘리포니아에서 실리콘웨이퍼공장을 매입했으며 실리콘밸리내의 모노리틱 메모리즈사나 어드벤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스사등도 구매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히다치사도 모터롤러사의 전체나 일부를 사려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미전자협회 (AEA)의 「랠프·톰슨」부회장은 『우리는 도미노 현상이란 말조차 듣고있다』 고 얘기하고 있고 한 산업분석가는 『인텔사를 빼놓고는 모든 미국 반도체 회사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태』 라고까지 말한다.
AEA는 올 연말까지 전자산업 분야에서만 모두 약4백건의 대미 일본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와 부품공장도 수입규제와 엔화강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급증하고 있는 추세.
미 자동차부품제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도요타나 마쓰다를 비롯한 일본회사가 미국에 부품제조· 생산· 유통등을 위해 차린 회사는 1백18개에 이르며 오는 88년에는 3백개에 달할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철강업도 매수나 현지 법인설립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자본참여를 확대함으로써 발판을 다지고있는 분야다. 이미 미국 4대 철강회사들이 일본과 합작투자를 하거나 자본참여가 돼있는 상태로 신일본 제철은 인랜드스틸사가 계획하고 있는 2억5천만달러짜리 설비투자의 참여를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콜럼비아대학의 일본 전문가인 「휴즈·패트릭」 교수는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50∼60년대 미 다국적 기업들의 유럽진출을 방불케 한다』고 얘기한다.
부동산도 일본인에게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기업의 미 부동산시장 진출은 이미 하와이등에 20억달러이상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슈와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슈와사는 올가을 들어서만 로스앤젤레스의 아르코플라자빌딩을 6억2천만달러에, ABC방송본부가 들어있는 뉴욕의 캐피틀 사티즈빌딩을 1억6천5백만달러에 사들였다.
이밖에도 뱅커즈트러스트은행도 뉴욕맨해턴의 월스트리트에 있는 빌딩을 일본기업에 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고 세계 최대의 기업인 엑슨사와 록펠러그룹이 공동 소유하고있는 맨해턴의 53층 빌딩도 슈와사와 스미토모생명· 일본생명등과 상담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부동산으로는 최대 규모중 하나로 꼽힐 이 거래는 대략 7억5천만달러상당 에 이를 전망.
미 부동산조사공사의 수석 부사장인 「리처드·케이틀리」 씨는 일본의 미국내 부동산투자는 87년에 가면 현재의 2배인 연50억∼6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부동산은 일부지역에서는 공급과잉상태를 빚고 있는데도 이같은 일본의 투자러시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함께 일본자본의 미 금융시장 진출도 주목거리다.
일본의 금리가 전후 최저수준까지 떨어지자 달러화 약세 추세로 인한 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증권, 특히 10년이상의 장기채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 최근에는 전체 발행물량의 25%까지를 사들이고 있다.
이같은 일본인의 대미 투자러시가 미국인의 눈에 곱게 비칠리만은 없다. 유럽이나 캐나다쪽으로부터의 투자와는 달리 일본에 대해서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전자나 자동차부품처럼 일본의 진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분야에서는 반발도 적잖다.
그러나 요즘 여건으로라면 일본의 대미투자는 더욱 가속화될 조짐이어서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거리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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