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시감 차명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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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큰댁에 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추풍령을 지나 환강재를 넘어가는데 길목에서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가 찢어질 것 같이 감이 많이 달린 감나무를 보니 마치 주황색꽃나무처럼 아름답다.
산중턱에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마 아주 높은 산인가 보다, 하는데 후다닥 놀란 산토끼가 달아나고 있다.
산밑의 과수원에는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으니, 아! 가을인가? 하는 시구가 떠오른다.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야외로 나오니 계절감각이 신선하게 와닿는다.
언제봐도 인정 많으신 형님이 나오시며 반기신다.
점심때가 되어 이웃의 몇분이 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올해는 출수기에 태풍이 불어 피해를 좀 보았지』 『그래도 요즈음은 옛날 같지 않아 시골도 살기가 괜찮은기라』하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었다.
할머니는 이어 『가스레인지다, 컬러TV다, 전자제품을 도시 부러울 것 없이 다쓰지. 농삿일도 기계로 많이 하는지라 그리 힘든 것도 아닌데 처자들이 농촌을 왜들 싫어 하는지 모르겠어. 올해는 며느리를 봐야할텐데. 자네 어디 한번 알아봐주게』하시며 손을 꼬옥 잡으신다.
형님 말씀이 우리 동네에 시골로 내려 오려는 신부감을 못 구해 혼기를 놓친 총각이 몇이 더 있다고 하신다.
하루를 묵고 나오려는데 잘익은 붉은 고추를 한두근 내어놓으신다.
힘들어 농사 지으신 것 죄송한 마음으로 받아 왔었다.
오늘은 그 고추로 김치를 담으니 고향의 그 할머님 말씀이 떠올라 아무래도 농촌을 좋아하는 맘씨착한 색시감을 알아 봐야겠는데….

<경북구미시도량 1동6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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