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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회고록 질문 안 하기로 했죠?” 말도 못 꺼내게 한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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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정으로 충북 지역 경제 현장을 찾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후 괴산군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매장을 둘러본 뒤 떠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송민순 회고록’ 논란과 관련해 “나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깐, 나 문재인이 두려워 일어나는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 오늘 여기(일정)에 국한해 주세요.”

남의 말하듯 다른 이에게 물으라니
대선 주자로서 공인 의식에 의문
“정치하다보면 맷집도 세야” 발언도
새누리 “문, 송민순 말 인정하는 셈”

18일 충북 진천의 어린이집을 찾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쾌한 기색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끊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와 관련해 ‘북한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사전통보를 한 것이냐, 동의를 구한 거냐’는 질문이 나온 뒤였다. 그래도 질문이 또 나오자 “기억이 좋은 분들에게 들으세요”라고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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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에서 열린 주민간담회에서는 “ 저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깐 저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자들에게는 “한마디로 군대에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걸핏하면 종북 타령이냐”며 여당에 불만을 표시했다.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을 만나선 "정치를 하다보면 맷집도 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관계의 매듭은 계속 꼬이고, 여야 공방도 격화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녹아내리는 색깔론의 빙하 위에 올라탔다”고 받아쳤다.

문 전 대표는 회고록 논란이 불거진 이래 새누리당의 공격엔 맞대응하면서도 사실관계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심지어 17일엔 “( 결의안에) 내가 찬성했는지 기권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지금 가장 기억을 잘하는 사람은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송 전 장관 아닌가. (문 전 대표가) 송 전 장관의 말을 사실상 인정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의 경쟁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문 전 대표가 진실을 밝혀 빨리 (사실관계) 정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불만은 더민주에서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유력 대선후보로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계산이겠지만 진실을 모르는 당도 무턱대고 말려들기만 하면 안 된다”며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모르면서 막으려고만 하는 새누리당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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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표는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다. 논란이 된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사실상 주재했다. 사실관계 규명의 책임이 과연 그에겐 없을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며 남의 일 대하듯 하니 야당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공인의식’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글=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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