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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경제 회생 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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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닐라=김진국 특파원】지난 5일 밤 TV에 등장한 「아키노」필리핀대통령은 「비가이 푸소(온정 베풀기)운동」 에 참여할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특유의 타갈로그 액선트로 차분히 이야기하는 대통령의 얼굴과 굶주린 필리핀어린이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담을 스냅사진이 교차했다.
크리스머스를 앞두고 「아키노」대통령이 앞장선 이 비가이 푸소운동은 필리핀의 경제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마르코스」의 크로니(족벌) 자본주의 아래서 수탈과 탐욕에 찌들었던 필리핀경제는 「아키노」의「인민의 힘 개발(PPD)정책」 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으나 오랜 가난과 모순·부패의 늪에서 헤어나기에는 너무도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마닐라주재 미대사관의 최근 필리핀경제에 관한 보고서는 86년 연평균성장률이 플러스가 될 만큼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나 자본재와 원자재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으며 제조업과 고용이 약간 회복세를 보이는 등 고무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전망에 비관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제조업가동률은 50%밖에 안 되고 2백72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는 92년까지 3백35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소비수요는 아직도 취약하며 국내총생산(GDP)도 금년 전반기에 85년 동기대비 2·6%나 떨어졌다.
그래서 일부 분석가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두고 『어둠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격』 이라고 냉소한다.
그러나 6일 기자가 만난 아시아 경영연구소(AIM)의 「로페스」교수는 『희망적인 요인들이 많다』고 말하고 특히 「마르코스」시대에 있었던 외국으로의 자본도피가 (1백50억∼2백50억달러) 줄어들고 다시 국내로 환류 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10월 현재 37%에 이르는 외채상환 율도 상환연기 협상이 타결돼 내년에는 35%로 떨어진다. 또 앞으로 5년간 연 평균6·8%로 예상되는 GNP의 증가가 이것을 보상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아키노」 등장이후 외화의 유입으로 페소화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플레율도 85년 말부터 떨어지기 시작, 지난 1월말과 8월말 각각 마이너스 1·4%와 마이너스 1·8%를 기록했다.
더구나 지난해 말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유가도 「아키노」정권의 출현과 시기적으로 일치해 70년대 이후 가강 좋은 경제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아키노」정부의 중요과제는 이러한 현상들을 장기적 경제 전략으로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 개발은행(ADB)회의에 참석한 「하이메· 옹핀」 재무장관은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대중빈곤과 실업문제』라고 말했다.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가다 차를 세우면 도로 한가운데로 나와 구걸하는 시꺼먼 얼굴의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젊은 실업자들이 관광객에게 구걸하거나 공원벤치, 건물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도 이 도시의 보편화된 풍경이다. 더욱 심한 농촌의 궁핍은 신인민군(NPA)의 세력 확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필리핀가계의 5분의3이 월평균 가계소득 2천3백82페소(약9만5천원) 이하의 절대 빈곤층. 한 경제학자는 『빈곤은 이제 이 나라의 사회적·정신적 재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빈곤·실업문제에 중점을 두는 인민의 힘 개발정책이 지난7월 내각의 승인을 받았다.
인민의 힘 개발정책은 농촌지역경제와 중소기업을 육성, 농촌중심의 내수시장을 강화해 미래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5천8백만 필리핀 인구의 70%가 거주하는 농촌에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것은 농촌경제부문이 도시경제부문보다 수입자극요인이 적으며 인구의 도시유입에 따른 사회·경제적 긴장도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못한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먼저 연2· 8%에 이르는 인구증가율. 일부전문가들은 강력한 인구정책을 요구하고 있으나 가톨릭의 계속적 지지가 필요한「아키노」로서는 손대기 곤란한 문제다.
또 농촌지역에 대한 유수정책이 수입자유화정책과 연결돼 수입품 소비에 낭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한편 설탕· 코코넛농장 등 생산성이 낮은 농업플랜테이션을 옥수수·쌀 등으로 바꾸는 문제도 그 전제조건으로 토지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데서 장애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적자원이다. 마닐라의 한 한국인 상사주재원은 『필리핀인의 정신적 타락이 치유되지 않는 한 가망이 없다』 고 말한다.
인구는 증가하는데 취학아동 수는 해마다 떨어지고, 학교는 다니지 않고 신문·담배·사탕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내일의 필리핀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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