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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미스터리…북한의 협박성 답변? 국정원 북 동향 팩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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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밝힌 ‘북한 쪽지’가 논란의 핵으로 부상했다.

여당 “쪽지에 남북회담 시점 명시
북한 기존입장이란 주장은 궤변”
송 전 장관 “쪽지 존재 부인 못할 것”
문건 보여준 백종천 전 안보실장
“당시 이슈인 북 인권 등 담긴 것”

2007년 11월 1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송 전 장관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당시 회의 결론을 놓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11월 18일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하자 문 전 실장이 ‘남북경로로 확인하자’고 결론 내렸다”고 적었다. 반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18일 회의에선 표결에서 기권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북한에 통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유엔 표결 시 찬반 여부를 북한에 물어보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 측은 북한에 허락을 구한 게 아니라 결정 사실을 통보해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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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은 17일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자신의 회고록과 관련, “책에 써놓은 그대로다”고 말했다. 이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당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했는지 여부에 대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밝혔다. [사진 김상선·전민규 기자]

◆‘북 답변 쪽지’ 실체가 있나=이런 양측의 진실게임에 변수로 떠오른 게 바로 이틀 뒤인 2007년 11월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순방 중이던 싱가포르에서 직접 송 전 장관에게 보여줬다는 ‘쪽지’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싱가포르 현지 노 대통령 숙소에서 백종천 안보실장으로부터 ‘인권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북측 ‘반응’이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다”고 적었다. 송 전 장관은 17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기자들과 만나 ‘쪽지’의 존재와 관련, “부인할 성격이 못된다”고 강조했다.

백 전 실장도 존재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국정원이 안보실로 대북정보를 보내오는데 당시는 순방 중이었으니 대통령 수행 비서진에게 팩스로 보낸 걸 나에게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쪽지’냐 ‘팩스 문건’이냐의 차이일 뿐 싱가포르의 노 전 대통령 숙소에서 송 전 장관에게 보여준 북한 관련 문서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만 백 전 실장은 북한이 직접 보낸 문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무슨 라인으로 직접 대통령 비서실로 팩스를 보내느냐”고 반문했다.

◆쪽지 내용은 =본격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건 쪽지 내용에 대한 해석이다.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 적은 쪽지의 전문(全文)은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反)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다”였다. 송 전 장관은 남측이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시 찬반 여부를 물어본 데 대한 ‘북한의 답변’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백 전 실장은 “대북 관련 정보가 정리된 것(문서)에 당시 북한 인권 문제가 이슈였으니 그런 것도 (담겨)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의안에 기권한다는) 우리 입장을 알렸고 북한은 자기들이 몇 년 전부터 주장해온 입장을 밝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의원도 “북한에 우리 입장을 통보했으니 (정보기관이) 동향을 체크해 보고하지 않았겠느냐”며 “송 전 장관이 그걸 북측 답변이라고 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쪽지에 분명히 협박성 답변이 적혀 있기 때문에 기권에 대한 반응이란 것은 궤변”이라며 “북한 답변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맹우 북한결재의혹TF 팀장도 “쪽지에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2007년 10월 3일)을 한 후’라고 시점이 명시돼 있는데 기존 입장이란 주장은 앞뒤 안 맞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홍익표 더민주 의원은 “우리가 기권한다면 북한이 ‘잘했어요’라며 고마워해야 하느냐”며 “(쪽지의) 논리 구조를 보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문장 같다”고 말했다.

글=정효식·이지상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김상선·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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