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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중앙일보 대학평가] 필립스도 따라 한다…로봇청소기 성능 평가 국제표준 만든 임성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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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16 대학평가 <중> 교수 연구

2006년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주택 냉장고 안에서 프랑스인 영아 두 명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른바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모국으로 돌아간 이들의 부모를 용의자로 지목해 프랑스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프랑스 경찰은 약 3개월이 지난 뒤에야 그를 범인으로 입증해냈다. DNA 검증 방식이 한국과 일부 달랐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국제표준 63건 성과
연세·경북·KAIST·순천향대 순
“표준 만들면 해외시장 선점 유리”

권영빈 중앙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마다 제각각인 DNA 검증 방식을 통일시키겠다”며 연구에 착수했다. 사건이 터진 이듬해 그는 자신의 제안서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제출했다. 6년의 검토 끝에 권 교수의 제안은 국제표준으로 인정받 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국제 수사기관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국제표준이란 제품 등의 생산·설계·측정·평가에 쓰이는 통일된 기준을 말한다. 기업의 연구소 연구원이나 대학교수가 ISO 같은 국제표준기구에 표준을 제안하면 해당 기구가 2~3년간 심사를 거쳐 이를 국제표준으로 승인한다. 국제표준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응로 국가기술표준원 공업연구관은 “우리 기업이 만든 국제표준이 통용되면 제품이 해외시장을 선점하기 유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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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한 기업 에서 임성수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왼쪽 넷째)와 연구팀이 로봇청소기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말뚝 형태의 장애물을 피해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사진 우상조 기자]

임성수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2014년 만든 로봇청소기의 주행 성능 평가 국제표준이 대표적이다. 로봇청소기가 말뚝이나 문턱 등 장애물을 피해 움직이며 바닥 위 이물질을 흡수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필립스 등 해외 기업까지 임 교수의 국제표준을 따르면서 국내 기업 경쟁력은 크게 올랐다. 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2009년 9.8%에 불과한 삼성·LG·유진로봇 등 국내 기업의 로봇청소기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8.6%로 두 배 가까이로 올랐다.

국내 대학 교수나 연구원들도 지난 3년(2013~2015년)간 총 63건의 국제표준을 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의 집계 자료에 따르면 대학별로 연세대 7건, 경북대 6건, KAIST 5건, 순천향대 4건, 가천대·고려대 3건 순이었다. 이철희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관심 분야인 인터넷 동영상 화질과 관련된 국제표준을 연이어 발간했다”고 말했다. 경북대는 반도체 기술, 순천향대는 모바일 보안 등에 특화됐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제표준 기여율은 11.2%다. 박정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 비하면 기여율이 절반 수준이다.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자의 연구 방향을 국제표준 쪽으로 틀고 대학 차원의 인센티브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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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까지 국제표준에 대한 대학의 관심은 높지 않다. 대학에서 논문·특허만큼의 연구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정수 위원은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교수가 제안한 국제표준 건수는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정보기술(IT) 분야에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평가팀=남윤서(팀장)·조진형·위문희·노진호·백민경 기자, 남지혜·송지연·이수용 연구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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