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허술한 독립기념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독립기념관에선 요즘 웃지 못할 희화가 벌어져 또 한번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벌써 몇 달 전 독립기념관 제4전시관의 붙박이 전시장 속에서 귀중한 견품이 없어졌다. 생각하기 나름으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회중시계 하나. 60여년 전 동경2·8 독립 선언 당시 유학생 대표였던 김도연 선생이 갖고 있던 물건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견품 하나를 두고 분기충천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을 관리하는 자세를 놓고 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화재 때 온 나라가 그처럼 술렁거렸던 것은 불길이 커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너나 없이 모든 국민이 한문 두 푼 성금한 돈으로 짓는 집을 그렇게 허술하게 다룰 수가 있느냐 하는 도덕적인 분개였다.
이번 회중시계 사건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때와 다를 바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유품 보관소에서 유품을 도난 당했다는 사실 자체도 석연치 않은데 전시관계 책임자들은 그 대책을 논의한 결과 자체 수습하기로 결정,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가게에서 「비슷한 회중시계」 를 사다가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경찰에 도난신고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유품 제공자가 낯선 시계를 보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오죽 다급하고, 딱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인지상정과 함께 동정과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임시 변통할 일이 따로 있지, 고려자기가 깨졌다고 비슷한 모조품으로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당연한 이치도 이치지만 눈감고 아웅하는 관료적 책임 회피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더 한층 실망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유품 관리만해도 그렇다. 유품은 으레 하나 밖에 없게 마련이고, 그 유품만이 갖고 있는 사녹으로 하여 책중한 값을 지니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그런 유품을 한둘도 아니고 부지기수로 보관, 소장하고 있을 텐데 회중시계 모양으로 슬금슬금 없어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문제의 전시장은 설마 누구나 들어가서 자물쇠를 뜯고 물건을 훔쳐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할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의심쩍은데, 관리인의 눈길마저 닿지 않았다면 문제는 이중으로 크다.
게다가 문제를 수습한 방법도 얼마나 어리석고 무 책임하고, 또 무식한가.
견품 하나 하나는 살아 숨쉬는 민족의 얼이며, 역사의 아픈 기록들이다. 유품 중에는 우리 선열들이 일본 침략자들에 굴하지 않고 이역에서 항일 투쟁을 벌였던 산 증거물도 있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들이다.
귀중하고 값진 유품 앞에서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경건히 대해도 부족할텐데 백화점 상품 다루듯 하다 잃어버린 것이다.
이 같은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민족의 성전이라 할 기념관을 관리할 수 있으며 국민 또한 마음놓고 맡길 수 있겠는가.
이번 김도연 선생 회중시계 도난사건은 이런 의미에서도 철저히 규명되고 납득할 수 있는 전후사정이 당국에 의해 극명히 밝혀져야 한다. 아울러 독립기념관 관리체제의 대폭수술과 정비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