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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찾는 국사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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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역사를 되돌아 본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의 위상을 확인하고 오늘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일을 설계하는 귀중한 순간들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같은 절실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사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수수께끼에 묻혀 그 참모습을 명확히 알수 없는 것은 안타깝다. 특히 민족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사부분은 국정 교과서에서조차 외면을 당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일찌기 『민족이 살고 죽기는 역사에 달려있다』고 설파한 일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국사 교육의 기본이라 할 초·중·고교의 국사 교과서는 과연 학생들에게 민족이 추구하는 이상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으며, 또 조국이 필요로 하는 참된 국민교육의 구실을 다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뒤늦게 문교부는 3일 국사 교육 심의회를 발족시켜 국정 교과서를 대폭 수정, 개편한다고 밝혔다. 89년까지는 초·중등용·교과서를, 90년까지는 고등용 교과서를 바꾼다는 것이다.
우선 이 심의회에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직도 교과서에서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를 송두리째 없애는 일이다.
82년 일본의 역사 왜곡 파동 이후 졸속으로 개편한 현행 교과서는 일제의 침탈상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나머지 이에 대한 민족의 항쟁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을미 보호 조약」「토지 조사 사업」 등 서술 용어에 있어서도 주체성을 살려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좋은 교과서」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째 학생들이 국사교육을 통해 과거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발자취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뜻을 새기고 또 미래를 개척하는 정신의 저력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새로 개편되는 교과서는 우리 민족의 자신감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사실들을 과감하게 추가해야 한다.
둘째는 그동안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 문제 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고대사 부분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고구려는 90년, 백제는 2백52년, 신라는 4백13년의 역사가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60년대의 교과서에 비하면 실로 1천5백년의 역사가 단축된 셈이다.
셋째로 교과서는 학자들의 연구서나 논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문적 연구가 미흡하다 하여 교과서에서 고대사를 제외시킨 것은 민족적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민족」이나 「애국」이란 명분으로 지나치게 미화시키거나 과장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증」이란 이름으로 역사 해석에 있어 민족의 꿈과 비전이 없이 지나치게 학문의 영역에 안주하는 것도 결코 올바른 태도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민족사학의 「정신」과 실증사학의 「과학」이 조화를 이룬 그런 교과서를 바란다.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안은 국정을 탈피하고 최소한 중·고교용 교과서만이라도 하루 속히 검인정으로 바꾸는 일이다.
국정교과서로는 오늘날의 다양한 학문 성과를 포괄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학문연구의 획일화, 역사 인식의 경직성, 학자들의 교과서 집필 기피 등으로 교과서의 질 저하를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민족사에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면 검인정으로 환원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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