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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사라진 책의 마지막 장은 나비족의 이야기일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라디오를 들여다보는 수리에게 모나가 갑자기 물었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57> 오크마을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는데,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 레뮤리아 왕국 사람들은 모두 거인이잖아?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수리가 모나를 쳐다보고 조금씩 웃다가 기어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어요?”

모나는 씨익 웃으며 머쓱해했다.

“내가 아는 척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레뮤리아 왕국의 자이언트들이 키 크고 덩치만 큰 건 아니잖아요?”

수리는 계속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모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수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동안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휴, 답답해. 나 같으면 만나자마자 물었을 거예요. 하여간, 모나는 남자는 남자네요. 상남자!”

수리는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칭찬이에요.”

모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레뮤리아 왕국 사람들은 눈도 크고, 귀도 길어요. 입도 매우 크죠. 흐흐. 진짜 다 커.”

수리는 바닥에 돌로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그림은 이스터 섬의 거인이었다.

“그래. 마치 우리 종족의 신처럼 생겼어.”

갑자기 수리가 모나를 몰아붙였다.

“종족의 신이요? 모나 종족의 신은 어떤 신이길래 생김새까지 알 수 있어요? 정말 이렇게 생겼어요?”

“우리 종족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의식을 치르곤 했어. 그 의식 때 신의 생김새를 닮은 가면을 쓰거나 분장을 했었지. 그리고 춤을 추었어.”

모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신의 모습을 닮은 가면, 분장… 그렇다면 신의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어요?”

“우리 종족이 사는 지역에 아주 큰 바위가 있거든.”

수리는 모나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모나는 옛날 이야기를 하는 삼촌 같았다.

“바위는 다른 바위와 모양새가 달랐어. 둥그렇거나 모난 모양이 아니고, 아주 커다란 돌판 같았지.”

모나는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빛에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 돌판에는 별, 태양, 머리 없는 사람들, 머리에 뿔을 달거나 모자를 쓴 사람들이 있었어. 눈에 또 눈을 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

수리는 손을 들어 모나의 이야기를 멈췄다.

“잠깐만요. 머리에 뿔을 달거나 모자를 쓴 사람들이 그림에 있었다고요? 눈에 눈을 달아요?”

모나의 이야기는 익숙한 전설을 떠올리게 했다.

“그 별들을 그려볼 수 있어요?”

모나는 수리가 그림 그리던 돌을 건네받아 바닥에 별들을 그렸다. 수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건 오리온자리에요. 오리온….”

수리는 어지러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종족에게는 우리 종족만의 오랜 이야기가 전해내려와. 그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는 이 별에서 왔다고 해. 이 별에서 지금 살고 있는 별로 오게 된 거지.”

수리는 모나가 그린 오리온자리 그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이 별의 최초인이라고 했어. 우리가 이 별에 와서 모든 걸 만들었다고 했어.”

모나는 자신의 종족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모나. 난 그동안 잘못 생각한 게 있어요. 이건 내 실수예요.”

수리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나는 네피림이 최초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나의 이야기도 틀리지 않아요.”

“네피림이 자신들을 닮은 기계인 누이를 만들었고, 그중 돌연변이가 일어나 너같이 생긴 사람들이 생겨난 거잖아? 네가 말해주었잖아?”

모나는 오히려 수리에게 되물었다. 수리가 실수했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모나. 지금 말하면서 그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모르겠어요?”

모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모나, 모나의 종족이 최초인이라면서요?”

그제야 모나도 깨달았는지 놀라움으로 눈이 커졌다.

“그래. 수리야. 그렇다면 이 별의 최초인은 네피림과 우리 종족, 이렇게 둘이네.”

수리는 대단한 발견을 해낸 사람처럼 우왕좌왕했다.

“모나의 종족 이름은 뭐예요?”

“너는 단 한 번도 우리 종족 이름을 묻지 않았었지? 흠…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슬펐었는데 말이야.”

진짜 서운해하는 모나에게 수리는 두 손을 비는 시늉까지 했다.

“미안해요. 그때는 우리가 적이었잖아요? 물론 나중에 모나가 저희를 도와줬죠.”

모나는 갑자기 자세를 고쳤다. 늠름하고 의연했다.

“나비족!”

“나비족이요?”

수리는 화난 듯이 버럭 소리질렀다. 모나는 의젓한 자세로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우리 나비족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땋아서 나비 날개 모양으로 말아서 머리 양쪽에 고정하지. 우리 나비족의 말로 ‘나쉬니나슘타’라고 해.”

“어쩌면… 우리가 만났던 나비들의 노래가, 네피림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먼 옛날에 살았던 나비족의 역사를 노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리는 꿈을 꾸는 듯했다. 모나는 가만히 있었다.

“네피림과 누이, 폴리페서, 인간들 그리고 요니구니 문명. 이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책의 마지막 장이 사라졌다고 했잖아요? 그 마지막 장이 바로 나비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스터 섬의 거인들이 나무로 만든 태블릿에 남긴 암호가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밝혀낼 수 있어요.”

수리는 왔다 갔다 서성거렸고, 모나는 그 뒤를 좇았다.

“그 의미는 이미 밝히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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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수리가 갑자기 멈추어섰다.

“밝혀졌죠. 그런데 완전하지 않았죠. 그래서 이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

수리는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은 우주인 복장을 한 사람일 수 있어요. 또 머리에 모자를 쓴 사람들은 분명히 이스터 섬의 거인족일 거예요.”

이번엔 모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리!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우리 나비족이라는 거야?”

수리는 또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지 않았다.

“그건 좀 더 두고 생각해 볼 문제예요.”

“그래, 그럼 일단 그 이상한 나무를 베러 가자.”

모나가 앞장섰다.

마루를 구출하기 위한 특별한 작전

이상한 나무의 숲에 들어섰다. 오크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나무를 ‘카치나’라고 불렀다. 카치나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나무라고 하기에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는 생명체로 보였다. 멀리서 보면 숲처럼 보였다. 카치나에서 뻗어나온 가지와 줄기들은 서로 손을 잡은 것처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푸른빛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나무가 아닐지도 몰라.”

수리가 중얼거렸다.

“나무가 아니라고? 그럼 뭐지?”

모나가 물었다.

“어쩌면… 이건 별일지도 몰라.”

“별…이라고?”

수리와 모나는 카치나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어쩌면….”

“또 어쩌면이야? 그냥 말해. 모든 의견이 다 맞을 순 없잖아? 틀리면 어때? 지르고 보는 거야.”

모나는 주저하는 수리를 다그쳤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고, 우리는 우주선을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수리의 말에 모나는 감탄사를 토해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이 카치나가 혹시….”

모나가 주저했고 수리가 다그쳤다.

“혹시라는 말 쓰지 말아요. 틀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 알겠어. 혹시… 혹시가 아니고, 카치나가 우주선이라고 해도 그 주인만이 저 우주선을 맘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리는 그저 고개만 까딱까딱할 뿐이었다.

“먼저 카치나의 비밀을 알아야겠어요. 궁으로 돌아가요. 친구들에게도 알려야겠어요.”

수리는 모나와 함께 라디오를 들고 오크마을을 떠났다. 레뮤리아 궁으로 돌아온 수리는 당장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마루였다. 분홍 돼지로 변신한 마루가 내일 이스터 장군 결혼식에 제물로 쓰일 예정이었다.

마루를 구출하는 일이 먼저였다. 하지만 이스터 장군은 군 지휘자였다. 레뮤리아 왕국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군대는 지속적으로 훈련을 해왔다. 이스터 장군은 군대를 맘대로 통솔할 수 있는 최고권력자였다. 그 권력에 도전하면 이스터 장군이 그냥 당하고 있을 리 없었다. 또 평화만이 존재했던 레뮤리아 왕국에 진짜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정교한 작전이 필요해.”

사비가 말했다.

“쉽지 않아. 이스터 장군은 레뮤리아 왕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어. 왕과 왕비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왕과 왕비가 요리만 하기 때문이야. 이스터 장군의 권력에 조금도 반발하지 않으니까.”

수리는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그럼 어쩌지? 우주선을 만들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당장 마루가….”

골리 쌤도 걱정이 많았다.

“로드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로드는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사람들을 돕기도 했잖아? 아마 우리가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할 거야.”

역시 사비였다.

“그건 위험해. 로드는 착한 성격 때문에 자신을 희생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인 왕과 왕비, 극단적으로는 레뮤리아 왕국 국민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로드는.”

수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 싸움을 생각했다. 확실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수리가 입을 열었다.

“특공대를 만들자.”

모두 입을 크게 벌리고 수리만 쳐다보았다.

“특공대를 만들어서 마루만 빼오자고.”

수리는 벌써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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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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