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헌의석확보가 위기를의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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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6·8타락선거로 이룩한 7대국회 공화당의 개헌선 확보는 위기의 신호였다. 정구영씨는 3선개헌 가능성을 직감하고 현저한 부정선거지구의 재선거를 건의했다. 그는 선거사범의 공정한 처리를 위해 내각을 개편하도록 대통령에게 두 차례나 건의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안됩니다. 내무·법무는 고사하고 단 한사람도 바꾸지 않으렵니다>라고 단호히 거부했다.
전면 재선거를 요구했던 야당도 국회등원거부 말고는 투쟁도, 대화도 결단하지 못한채 시간을 허송하다가 그해 겨울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위헌협상으로 등원의 명분을 찾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국회와 정당은 권력에 매몰되어갔다. 공화당은 국회를 완벽하게 지배했고 그 공화당은 총재인 대통령의 통제아래 있었다.
이듬해 때이른 3선개헌론이 나왔다. 박대통령과 그 막료의 개헌공작은 개헌을 반대하는 김종비사단의 저항을 꺾는 당내투쟁에서 시작되었다.
박대통령과 정구영씨 사이의 정면 대결은 7·25면담에서 시작되었다. 그 얘기.
3선개헌안이 발의되기전 마지막으로 박대통령과 만난 것이 7월25일이야. 그때 우리는 개헌발의를 막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낼 건의문을 만들어두고 있던 때였는데 별안간 대통령담화가 나왔어.
요지는<공화당은 개헌안을 발의하라. 만약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나와 나의 각료들은 물러날 것이다.>그런 내용이지….
그렇지만 해석이 갈 안돼. 개헌을 발의하라고 한 것은 공화당총재로서 공화당에 대해 한말이라고 해도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나와 나의 각료는 물러나겠다고 한말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그때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권한도 없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임투표를 묻는 제도도 없었어. 그렇지만 그런 법률적 측면을 따질 계제가 못돼. 7대국회들어 지난 2년 대통령 명령이면 법률과도 같은 상태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개헌안은 필연적으로 발의되는 것이다, 사태가 매우 중대하고 어려운 고비에 왔다, 이렇게 직감했어. 최후까지 반대투쟁을 해야겠다, 개헌발의를 막기 위한 건의문에 41명이 서명했지만 압력으로 많이 무너지겠지, 신민당에서도 벌써 3명의 이탈자가 생겨났는데 공화당에서야 말할것 없지, 그렇지만 마지막 10명만 결속하면 막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내집을 찾아온 의원들에게 각자가 자기신념을 지키는데 노력하자 그런 얘기만 했어…. 그러고 있는데 오후3시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는데 5시에 들어와 달라는거야.
5시에 갔어요. 대통령집무실로 갔더니 윤치영당의장서리·최희송·김정열의원 세사람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어. 내가 도착하고 잠시 후 대통령이 들어왔어.

<오늘 아침 제 담화발표 들으셨지요.>

<예,들었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모두가 묵묵부답이야. 윤치영씨야 찬성해온 사람이고 우리 세사람한테 묻는 얘긴데 정면으로 충돌할 얘기니 누군들 선뜻 말을 할 마음이 아니지.
그러니까 대통령이 나를 보면서<정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올시다. 저의 생각은 이미 2년전 겨울에 드린 말씀이있읍니다. 그것으로 짐작하실수 있을것입니다.>
대통령이 아무 말을 안 해.

<저는 지난 두달남짓 병석에 누워있었읍니다만 당의 개헌논의는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2월의원총회에서 개헌논란이 있은 후 대통령께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당의장이다, 사무총장이다 하는 이들이 계속 개헌운동을 하고 있어서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각하를 뵐려고 했으나 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개헌안 발의는 안하는게 옳다는건의문을 작성해서 서명을 받아두고 있는데 이 건의문을 대통령께 전달하기도 전에 이런 담화문이 발표되니 정말 놀랐읍니다….오늘 담화만 해도 어디서 무슨 근거로 담화를 발표하셨는지 생각이 들었읍니다.>그랬더니 대통령이 <아 정선생님, 이것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읍니까.. 제가 스스로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제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라고 해.

<아… 네 법적인 문제는 따로 또 있읍니다. 그렇지만 솔직이 제 심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총재께서 당원들에게 개헌발의를 종용하실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개헌발의는 당론으로 결정된 다음에 하셔야지 그냥 개헌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것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나와 나의 각료는 퇴진할 것이다, 도대체 부합되지 않습니다. 당에서 개헌발의가 될는지 안될는지 당공식기구의 토의가 있었어야할 것 아닙니까….총재 한분의 명령이 곧 당론일수는 없읍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옆에 있는 윤당의장에게<여보게. 혹시 당무회의에서 개헌을 발의하자고 결의한 일이 있나>했더니 묵묵부답이야.

<내가 병중이기는 해도 당의 움직임은 알아 .의원총회에서도 당무회의에서도 논의된 일이없어. 없는데 총재가 이런 담화를 발표하시도록 방치했는지를 내가 자네한테 묻는거야.>그래도 그 사람은 아무 말을 안 해.
그래 내가 다시 대통령을 향해<이것은 각하의 의사일는지는 몰라도 당론으로 된바 없는것을 강요하시은 비민주적인 처사입니다. 하물며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신임투표제가 없는데 개헌안이 부결되면 이것은 나에 대한 물신임으로 간주해 즉각 나와 나의 각료들은 사임하겠다, 즉 무정부상태로 물러나시겠다는데 이러한 중대 말씀을 대체 누구하고 논의한 것입니까….
저희들은 총재상의역이라는 직책을 맡고 항상 대통령을 올바로 보필할 것인가에 대해 부심하고 있는 사람인데 불행히도 각하를 뵐길이 없었읍니다….상의역이란 고문과는 다릅니다.고문은당총재의 자문에만 응하면 되지만 상의역이란 문자 그대로 서로 의논하게 되어 있고 국가의중대사안이 있으면 자진해 찾아뵙고 의논 할 수도 있는 역할을 맡긴것이라 믿어왔고 그래서 언젠가는 부르실 것으로 고대하고 있었읍니다.>
내가 길게 얘기를 했어.당운영상의 문제, 법률상의 모순, 이런것도 지적하고 3선개헌의 부당함도 말했어.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고 다만 표정을 보니 얼굴이 약간 홍조가 된 것은 있었지만….
한참 후 대통령은 내말에는 대답이 없이<최희송의원은 어떻게생각하셨소>라고 물어. 그러자 최의원은<저의 생각은 이미 각하께 몇 차례 말씀을 드렀습니다. 3선개헌이 부당하다는 말씀은 드렸었지요…. 그러나 각하께서 발표하신 이상에는 제가 어떻게 각하의 의견을 의외라 할수 있겠읍니까.>
이 양반이 그대로 따르겠다고해. 그건 실로 의외의 대답이었어. 그분은 과거에 민주당을 했던 사막이야. 그런 사람이 뜻밖의 말을 해.
대통령은 이번에는<김정열은 어떻게 생각하시니까>라고 묻는 거야. 김정열씨는 자유당 때 국방장관을 지내지 않았어….

<글쎄올시다….저도 3선개헌이 부당하다는 말을 몇차례 드린적이 있었고…. 제가 여기 국회속기록을 가져왔읍니다. 자유당시대 3선개헌 할적에 제안설명에서 이승만박사가 장기집권을 해야 옳다는 이점에 대해서, 북괴의 남침위협이 있다, 조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되겠다, 즉 조국근대화지요, 세째로는 적당한 후임자가 없다, 이 이유를 들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헌을 하겠다는 당간부들의 담화를 보면 대체로 그런 똑같은 세가지 가지고 자유당시절의 개헌이유를 재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때 속기록을 읽겠읍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화를 내더군. <그까짓 퀘퀘국은 자유당시대 했던것을 여기서 얘기하려 합니까.>그게 그날 처음으로 나온 대통령의 감정표시야. 그러니까 김정열씨가<글세요. 그래도 좀 들어보세요>라고 말하고 대통령은 <그만둬요. 그만둬….> 그러고….
그것뿐이야. 우리와 상의하려는게 아니고 통고한 것이지. 더 할말이 없어. 그래 돌아가겠다고 하고 나는 청와대를 나왔어.
아무 결론도 없이 대통령의 경의만 확인하고 돌아온거야. 그렇지만 속은 좀 후련해. 속마음을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했다는데서 갑갑하던 마음이 조금 풀려. 내가 단순히 고집장이로 한말이 아니고 나의 신념에 의거해서, 또 당신을 올바른 대통령의 길로 이끌기위해 이런 일을 하고있다는 취지를 얘기했고, 내 신념은 결단코 굽히지 않으리라는 얘기드했고….◇「정구영 회고록」「실패한 도전」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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