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자만 경계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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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수지의 급속한 개선은 분명 우리 경제에 크나 큰 위안이다. 3·4분기까지의 실적을 두고 볼 때 올해 경상수지는 적어도 40억 달러 넘는 흑자를 예상할 만하다.
이 같은 실적과 예상은 우리로서는 희귀한 경험이며 스스로 대견해 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상황과 조건의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문제와 새로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동반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이 같은 새로운 경험과 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한치의 과장이나 소홀함이 없이 규정하여 새로운 과제와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냉정함과 분별력이다.
행여 자만과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 귀중한 경험을 한때의 호시절로 끝맺음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우는 분명 노파심의 발로이겠지만 너무 오래 동안 국제수지의 장벽에 일방적으로 제약받아 온 우리의 정책환경에 비추어 반드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올해의 국제수지 개선은 원유가 하락이라는 크나큰 변화와 국제금리, 달러 하락이라는 외생 변수의 호전에 크게 힘입었다는 점을 언제나 고려에 넣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을 과소 평가할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의 잠재력은 과대 평가되고, 그에 근거한 정책과 경영의사 결정은 자칫 빗나간 목표를 추구하게 되기 쉽다. 이런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들 외생 변수는 이미 4·4분기 들어서부터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원유가는 이번 제네바 OPEC회의의 감산유지 결정으로 향후 강세 반전이 예상된다.
국제금리의 하락추세도 거의. 한계에 와 있고 달러화하락은 조정국면에 들어서 있다.
이 같은 환경으로 미루어 올해 경상흑자는 흑자기조의 정착이라기보다 정착의 기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흑자기조를 정착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산업구조가 더 경쟁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계속 바뀌어야 한다. 이점에서는 최근 일련의 구조조정정책과 부실정리, 기술 혁신 고무정책이 매우 적절했고 앞으로도 더욱 강화되어야 할 부문이다.
무역부문에서는 역시 구조적 불균형, 즉 대미 흑자와 대일 적자의 심화현상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대미 흑자는 통상외교와 수입정책의 탄력화로 대응할 수밖에 없으나 대일 적자문제는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협조하여 근본적인 개선책을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인 무역 관세정책의 조정도 물론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대일 불균형을 개선하는 산업정책들이 더 연구되고 실천돼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경상흑자의 대폭 증가에 따른 관련정책의 조정문제이나 이중 시급한 것은 역시 통화관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재정과 금융의 신중한 운영과 절제가 없을 경우 이 부문에서의 교란요인이 더욱 확대되고 종국에는 국제수지의 안정이나 흑자기조 정착마저 어려워질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런 여러 요소들은 흑자전환에 따른 보수적 문제가 아니라 흑자 그 자체만큼 중요한 과제들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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