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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로<서울 동숭동>|그들이 즐겨 찾는 명소의 문화를 알아본다|춤과 노래와 밀어 속 청춘이 "넘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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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동숭동 구 서울대문리대자리. 대학로. 토요일 하오 6시. 경찰들이 익숙하게 오가는 차들을 막는 것을 신호로 이화동 4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순식간에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이와 함께 거리 양쪽의 카페들은 청백색의 조명등을 켜기 시작한다.
문예회관 앞. 우렁찬 가스펠송이 터져 나온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 않는 「예수 전도단」 들이다. 푸른 눈의· 양인들도 섞여있어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원형극장에선 민예 극단의 농악놀이가 시작된다. 아스팔트 곳곳에 젊은이들이 주저앉아 노래를 부른다.
또 한편에선 30여명의 여고생들이 카세트 테이프에 맞춰 경쾌한 에어로빅 댄스를 추고 있다.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쾌해요.」
『남들이 노는 것만 봐도 즐겁습니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축제에 굶주렸어요.』「심심해서」가끔 나온다는 명지대 전자공학과 1학년 학생들의 말.
지난해 5월 서울시에서 문화·예술·낭만의 거리를 조성하겠다며 매주 토·일요일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든 이곳 대학로. 혹은 풍류마당. 이젠 모두 중년이 되었을 서울대 학생들이 『헤겔』 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던 마로니에 앞뜰은 주말마다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몰려든다.
삐꺽거리는 학림 다방의 목조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언제든 심각하게 학생들을 응시하던「베토벤」의 낡은 초상화도 이제는 없다. 그 대신 휘황찬란한 조명등과 푹신한 소퍼… 카페 학림 엔 어깨를 맞대고 밀어를 속삭이는 일군의 연인들로 출렁댄다.
대표적인 서울의 카페 촌. 「뜰외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몽빠르나스」 「소금창고」「장미 빛 인생」「하이델베르그」「클로우즈드」 ….
『요즘은 자가용을 몰고 오는 대학생들이 부쩍 늘었어요. 코피 값은 대학 주변 다방들보다 2백원 정도 비싸지만…』 카페「8과2분의 1」 의 지배인 윤종광씨의 말이다.
밤8시. 대학로엔 어느새 2만여 명의 청춘들로 가득 찼다. 자세히 보면 3분의2가 중·고등학생들이다. 대학생들은 어색한 낯빛으로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해프닝 마당을 기웃거린다. 한 떼의 소년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비디오보고 배웠어요.』『남들이 보고 있으니까 신이 나요.』 『저기 고등학교 형은 참 잘 추죠? 나도 그렇게 추고 싶어….』
펑크머리에 갓 콧수염이 나기 시작한 소년들이 『칙』 담뱃불을 붙인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10여명의 젊은이들이 흥사단 앞 도로에서 유행가를 부르며 막걸리 파티를 벌이고 있다. ROTC 학생들도 수줍은 듯이 끼여있다.
『처음엔 싸움이 많이 일어나 「광란의 거리」 라는 비난도 받았죠.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은 광장문화가 많이 성숙됐어요. 다 조용히 놀다 돌아가요.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은 다 얌전하답니다. 전 번에 서울대 의대에서 데모가 터졌을 때 「우리 젊은이」 들은 가담하지 않습디다.」문예회관 관장 김용진씨 (44)의 말이다..
밤9시. 아스팔트 곳곳에 막걸리 통이 구르기 시작한다. 마로니에공원 한편에서 「해방 춤」을 추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쫒겨 나고 있다. 『시에서 불온한 놀이나 급진적 행위예술은 통제하고 있어요.』김 관장이 덧붙인다. 수만 명의 인파, 인파, 인파들… 축제의 밤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대학로요? 중학생들 노는데 말이죠? 대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어요. 더러 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데이트나 하구… 심심한 친구들이 자주 오죠.』 바탕골 소극장에 연극을 보러왔다는 고영범군(25·연대)은 말한다. 『한마디로 경박한 유원지죠.』
『대학로가 개방되면서 문화의 거리도 사라졌어요. 문화 주체들과 향유 객체간의 수준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관의 통제로 진보석이고 실험적인 젊은 문화가 싹틀 수 없고 대신 노는 문화만 대중화되고 있는 거죠.』 20년째 이곳에 살고있다는 조병준씨(27·회사원) 는 대학로는 「거대한 디스고테크」 라고 개탄한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놀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순수한 건 사실예요. 그러나 이 때문에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찰나적이고 경박해지는 건 문제예요.』이대생 한은희씨(23).
밤 9시50분. 대학로는 서서히 식어간다. 순찰을 돌던 전투경찰의 발걸음도 다소 방심한 채 흐트러지는 시간. 몇몇 아베크 족들만 공원 으슥한 곳으로 숨어들고 한 떼의 남자 대학생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대학로를 빠져나간다. <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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