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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에서 납치된 한국어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와 소련사이에 또 불행한 접촉사건이 발생했다. 소련의 태평양함대소속 군함이 7일 일본의 북해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우리어선 1척과 선원 26명을 납치해 갔다.
소련 측의 발표가 없어 납치이유나 경위, 그후의 사정 등은 아직 알 길이 없다.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은 여하간에 소련은 우리 화동호가 자기네 영해를 침범했다고 보고 끌어갔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는 피랍 위치가 소련영토에서 2백10마일 쫌 떨어진 공해 상이라고 한다.
사고 해역은 소련이 2차 대전 때 일본에서 빼 앗아간 북방 도서군의 남쪽이다. 일본 측 자료들에 의하면 이 섬들은 지금 소련의 군사기지들로 요새화 돼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소련군 당국이 우리 어선에 대해 첩보혐의를 씌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소련은 3년 전에 KAL기를 격추하고는 간첩협의를 씌웠던 일이 있다.
그러나 소련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소련의 군사첩보를 알아야 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 우리 어선은 그럴 여유도 없다.
우리와 소련사이에 이런 불행한 사고가 처음은 아니다. 두 차례의 항공기 격추사건과 6차례의 어선납치사건이 기록돼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소련과의 대화나 협상채널 개설 필요성이다. 한국과 소련은 군사·경제·교통 등의 측면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웃나라가 돼있다.
그럼에도 양국간에 발생하는 분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직접수단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매년 많은 어선들이 소련근해에 출어 하고 있는데도 민간어업협정 하나 맺지 못하고 있다.
이번의 경우에도 주변에 여러 나라의 어선이 있었음에도 우리 어선만 끌어갔다. 소련 측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과거의 예로 볼 때 우리에 대한 소련의 행위는 대체로 공정과 균형을 잃고 있다.
이번 화동호를 끌고 가면서도 소련 군인들은 통신 선을 차단하여 제대로 교신할 수가 없었다. 이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과잉조치다.
화동호의 경우 설사 소련 영해에 들어갔다 쳐도 그곳은 2백 마일로 확대 선포된 소련의 일방적인 접속 수역이다.
오늘날 해양자유와 공해제도에 제한이 가해져 접속 수역에 대한 연안국의 국권행사가 합법화되는 경향을 소련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본래의 취지나 정신은 강대국에 의한 해양독점을 막고 약소 연안국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소련의 행위는 그런 국제법 정신과는 거리가 먼,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이익의 침범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소련은 즉각 이번 사건에 대해 상세히 해명하고 정당한 절차로 속히 해결해야 한다.
피랍 선원들은 인도적 대우를 받아야 하며 문제해결도 인도적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같이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키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도 양국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스크바 당국은 한-소간의 교류상황이 그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현실적인 대응책에 호응해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최근 주장대로 소련이 진실로 아시아 국가이고 아시아와의 공존과 선린을 원한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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