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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풀린 소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소련에『크로코다일』(악어)이라는 잡지가 있다. 타블로이드판에 값은 30코펙(약 3백50원). 가판 대에 내놓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가장 인기 있는 풍자잡지다.
그 잡지에 이런 만화가 실렸다. 발 밑에 금방 캐낸 감자 무더기를 놓고 담 너머 이웃집과 수다를 떨고 있는 두 여인. 한 여인 왈,『글쎄, 내가 정원에 보트 카 한 병을 묻어 놓았더니 아들놈이 감자를 이만큼 캐 놓지 않았겠소.』
얼마 전 외신은 체코에서 기동훈련을 하던 소련 병사들이 탱크와 보트 카 두 상자(24병)를 맞바꿔 마시고는 곤드레 만드레가 되었다는 실화도 있었다.
미궁으로 끝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는 그렇다 치고, 지난 8월 흑해에서 있었던 유람선 아드미랄 나히모프 호의 침몰 사고도 결국 보트 카 때문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핵미사일을 적재한 핵 잠수함이 미국 근해에서 또 침몰되었다. 물론 보트 카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요즘의 소련사회는 무언가 나사가 풀려도 크게 풀려 있는 게 틀림없다.
크렘린 당국은 작년 6월1일 절주 령을 내렸다. 오래 동안 세계에서 가장 소문난 주호 민족으로 알려진 소련 인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모든 공식적인 연회에서도 알콜 대신 미네럴 워터나 주스를 쓰게 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매스 미디어나 문학작품, 영화, TV에서도 알콜을「문화의 적」으로 돌리고, 술 마시는 장면을 미화하거나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심지어는『금주와 문화』라는 잡지까지 등장했다.
음주에 대한 벌칙도 강화, 열 몇 개나 된다. 그 중에는 술 취한 채 직장에 출근하면 30∼50루 불의 벌금을 물게 한 조항도 있다.
인구 2억7천만명 중 알콜 중독자가 2천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평균수명도 자꾸 줄어들어 60년대엔 67세였는데 요즘은 62세가 되었다. 술로 인한 고혈압과 심장병 때문이다.
나사가 풀렸다는 점에서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술이 아니라 코카인 때문이다.
최근 미국정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매일 5천명의 미국인이 코카인에「입문」한다.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무려 5백만 명. 1년에 미국 내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코카인은 3백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나사가 풀린 강대국들의 사고는 그 피해가 단순히 자기네들만으로 그치지 않는데 있다.
이번 소련 핵 잠수함의 경우는 다행히 핵 누출이 없을 것이라 하여 안도감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술과 코카인으로 인한 사고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그들의 나사를 바짝 죄어 줄 무슨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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