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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기다리며 한시 감상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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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존재가 나고 또 나도 다함이 없어(有物來來不盡來)/다하였나 싶은 때에 어디선가 또 나오네(來盡處又從來)/시작도 없이 나고 또 나거늘(來來本自來無始)/그대는 아는가, 애초에 어디에서 오는지를(爲問君初何所來)

서울 1~9호선 승강장 등 작품 교체
새로 선정 276편에 한시 27수 포함

송도 삼절로 꼽혔던 조선시대 학자 서경덕(1489~1546)의 저서 『화담집(花潭集)』에 나오는 ‘유물(有物·존재에 대하여)’이란 시다.

이를 포함해 서울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에 한시가 게재된다. 이는 스크린도어에 시 게재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시 측은 “이달 20일부터 다음달까지 지하철 1~9호선과 분당선 스크린도어에 쓰여진 시(詩)를 교체한다”며 “지난 7월부터 시민 공모와 전문가 심사를 통해 276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게재된 작품 중 일부가 여성의 몸을 묘사하는 등 선정적이라는 문인단체와 시민들의 지적에 따른 조치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獨笑(독소·혼자 웃는 이유)’, ‘春興(춘흥·봄의 흥취) 등 고전 한시 27수도 처음 포함했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의 독소는 자연변화와 인생의 무상함을 관조하며 읊은 시다. 춘흥은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봄날의 풍경을 적은 정몽주의 시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은 “한문문화권의 유커들이나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과 저력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로 선정된 작품 중에는 현역 시인들의 작품 60여편도 들어있다. 황동규 시인의 1958년 데뷔작 ‘즐거운 편지’는 기다림을 통해 이별의 정한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적었다. 이외에 김소월의 ‘가는 길’, 윤동주의 ‘새로운 길’ 등 작고 시인들의 시 40여편도 포함됐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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