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북경간에 푸른 신호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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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6서울아시안게임은 대성공작이다.
여느 올림픽대회 못지 않은 화려하고 훌륭한 대회로 기록될 것으로 확신한다.
많은 불리한 조건을 안고 시작된 아시안게임 같은 큰 대회를 훌륭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는데 대해 서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스스로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한 한국국민의 열의는 서울아시안게임이 가지는 그 자체의 중요성만큼 인상적이었다.
남이 마련해 놓은 잔치에 와서 손님으로 적당히 먹고 마시고 즐긴 뒤 그냥 떠날 수 없는 것이 필자 같은 언론종사자의 속성이다. 이 잔치의 주인은 누구고,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깔끔하게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얼마나 친절하고, 손님들은 얼마나 유쾌한가를 구석구석 지켜보는 것이 여느 손님과 다른「손님기자」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손님기자의 눈에 비친 주인이자 일꾼이며 동시에 손님인 즉 한국인들은 이번 대회에 거의 한 마음으로 뭉쳐져 있었고 성공을 향한 열기도 높았다.
이 같은 단결과 열기가 서울대화성공의 열쇠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선수단의 괄목할 만한 경기실적만 갖고 얘기한다 해도 한국은 이미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일본이 1964년 동경올림픽개최와 함께 거둔 성과와도 비견될 수 있다.
따라서 88서울올림픽은 또 다른 커다란 도약을 위한 한국 민의 도전이 될 것이다.
이번 서울아시안게임이 거둔 정치적 성과에도 필자는 매우 긍정적이다.
한국 국내정치가 아닌 국제정치의 측면에서 서울대회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소속 36개 국가 가운데 일부 국가가 불참하긴 했으나 이같은 몇 개국의 불참은 서울대회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7월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렸던 영연방대회가 남아공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이유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서울대회는 국제대회로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다.
또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과 국교관계가 없는 중공의 참가와 중공선수단의 경기에 임하는 진지하고 열의에 찬 태도다.
한국과 중공선수간의 스포츠대결은 전혀 정치적·국민 감정적 차원의 대결이 아닌 정말로 순수한 스포츠정신에 입각한 정정당당한 만남이었다.
이는 분명히 서울과 북경관계의 미래에 푸른 신호등을 보는 기분이었다.
필자는 이번 서울의 스포츠 대 잔치를 지켜보면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스포츠대회에서 메달, 특히 승자에게 주어지는 금메달은 실상 커다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국 민의 금메달에 대한 열광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국민 자긍심의 발로다.
또 한국 민의 기쁨은 뉴델리대회이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한국스포츠의 당연한 보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열광과 기쁨에는 진정한 스포츠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기쁨이 결여돼 있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승부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간의 부인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심성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는 스포츠를 승자와 패자만이 있는 전정의 변형된 모습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스포츠 정신은 거듭 말해서 승자의 메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금메달의 숫자가 한 국가 한 국민의 다른 국가 다른 국민에 대한 우열의 측정기준도 되지 않는다.
스포츠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승패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라 선수들이 경기를 통해 보여주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인간 드라마에 대한 공감이다.
따라서 88서울올림픽은 참가 세계각국선수단은 물론 관중들이 이 같은 인간 드라마에 좀더 시선을 돌리고 마음을 열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커다란 성공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은 주최자의 승리가 아니라 전 아시아인과 전 세계인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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