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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빠져 한국으로 가출한 사우디 여대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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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여성들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건국기념일을 맞아 국기를 들고 길을 걷고 있다. 사우디는 여성 인권이 제한돼 있는 대표적 나라로 꼽힌다. [사진 로이터=뉴시스]

한류에 푹 빠진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대생 2명이 한국으로 가출했다. CNN 아랍판은 8일(현지시간) “부모의 허락 없이 두 사람이 한국으로 출국했으며 당국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에서 여성은 해외여행을 할 때 반드시 남성 가족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여대생들의 가출은 현지에서 ‘범죄’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여대생 중 한 명의 아버지는 현지 언론에 “22살인 딸이 6일 오전 학교에 간 뒤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며 “내 휴대전화를 몰래 이용해 여행 허가를 얻고 친구와 함께 한국으로 간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딸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 한국 문화가 좋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딸이 휴대전화 연락은 차단한 채 이메일을 통해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살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CNN은 현지 뉴스를 인용해 “리야드 알무바라키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여대생 한 명의 입국 사실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한 명의 동반 여부와 행적을 확인 중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들의 가출은 9일 트위터에서 ‘한국으로탈출한두사우디소녀()’를 뜻하는 아랍어 해시태그로 전세계 트렌드 상위 순위에 오르며 사우디 여성 인권 문제로도 확대됐다. 사우디 여성들은 여행 뿐 아니라 일상에서 늘 후견인인 남성 가족의 영향 아래 놓인다. 결혼을 할 때 허락을 받아야하고, 대학 입학이나 취업을 할 때도 남성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남성 가족 후견인은 보통 아버지나 남편, 남자 형제지만 이들이 없으면 아들이 후견인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사우디 여성단체는 지난달 대규모 온라인 서명 운동에 나섰고 수 만명이 여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당시 BBC는 “사우디 국왕 사무실로 직접 전보를 보낸 여성도 2500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여대생의 가출에 대해서도 트위터에서는 “그들이 안전하길 기원하며 다시는 (사우디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거나 “여행의 자유는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라는 멘션이 이어졌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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