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아버님 영전에… 부친|절망딛고 일어선 레슬링 김기정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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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버지…. 』
초라한 무덤앞 아침햇살에 빛나는 금빛 메달. 무릎을 꿇고 앉은 아마레슬러의 두눈에선 주르르 굵은 눈물이 방울져 흘렀다.
29일상오 인천시 부평공원묘지.
27일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l백kg급에서 자랑스런 금메달을 따낸 김기정선수 (25·안양시청소속)가 아버지의 영전에 감격스런 승리를 고하는 순간이다.
『이제야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합니다. 살아서 이 기쁨을 같이 하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저때문에 속을 끓이시다 일찍 돌아가시고…』
김선수는 돌아가신 아버지 김문환씨 (82년 56세로 작고)를 회상하며 목이 멨다.
김선수가 오늘의 아주제패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김씨는 평생의 보람으로 아들을 뒷바라지 해왔다.
6·25당시 소대장 (계급은 중사)으로 백마고지전투에 참가했다가 왼쪽가슴·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반생을 한쪽 폐 없이 다리를 절며 살아온 상이용사인 김씨는 아들 기정군이 인천대헌공고에 입학한 뒤 레슬링을 시작하자 『싸움꾼이 되기 쉽다』 고 말렸다.
그러나 1년만인 고2때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기왕에 시작한 운동이니 세계챔피언이 되라』 고 격려했다.
이때부터 아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김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꼭 경기장에 나가 스탠드앞자리서 응원하고 힘이 들어 게으름을 피우려는 아들을 꾸짖고 격려해 기정군이 레슬링에 전념하도록 이끌었다.
그런 김씨가 세상을 떠난 것은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했는데 예선서 1승2패로 탈락, 5위에 그쳤읍니다. 귀국하는 날 공항에 동생 승원(23) 이가 마중 나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퍼레이드도 참가하지 못하고 공항을 빠져 나와 집으로 달려갔지요. 아버지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
아들의 「승리」 소식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김씨는 아들의 패배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사흘만에 숨졌다.
목재소매상을 경영, 김선수를 뒷바라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안복분씨(56)는 4남3녀 가족들을 이끌고 인천시 간석동 4백50만원짜리 전세집으로 옮겨야 했다. 어려웠던 살림은 더욱 어려워져 김선수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된 운동을 해야했다. 취직한 큰형의 수입만으론 어려워 어머니 안씨는 동네이웃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살림을 보태기도 했다.
「아버지를 여읜 한」은 김선수의 가슴에 못으로 박혔다.
사생결단의 맹훈련은 김선수의 기량을 하루가 다르게 발전시켰다.
서울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돼 태릉훈련원에서 보낸 7백일간의 훈련기간 중 김선수는 늘 남보다 2∼3시간씩 혼자서 과외훈련을 하곤 했다.
약점인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5차례 하게 되어있는 줄타기를 2배로 늘려 손목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참아냈고 지난6월 모부대에서 특수 유격훈련을 받았을 때도 가장 열성을 보인 선수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았다.
주무기인 안아 넘기기와 옆 굴리기 기술은 세계 수준급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아주대회 금메달은 그 당연한 결실.
『이번 금메달을 계기로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되었읍니다. 88올림픽에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다시 아버지 영전에 기쁜 소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
29일 선수촌을 나오자 곧바로 아버지 묘소로 달려간 김선수의 다짐이었다. <제정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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