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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변신한 산토스

중앙일보

입력

"매에서 비둘기로(From hawk to dove)."

BBC방송은 7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안 마누엘 산토스(65) 콜롬비아 대통령의 극적인 변신을 이같이 보도했다. 과거 반군과의 유혈 대결에 앞장섰던 인물이 평화 협정을 이끈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산토스는 1938∼42년 콜롬비아 대통령을 지낸 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와 2002∼2010년 부통령을 지낸 프란시스코 산토스 칼데론을 배출한 콜롬비아의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그는 미국 캔자스대에서 경제학·경영학을 전공했고 영국 런던정경대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산토스는 가문 소유의 콜롬비아 최대 신문 '엘티엠포'의 부국장을 지내는 등 엘리코 코스를 거쳤다.

산토스는 91∼94년 대외무역부 장관, 2000∼2002년 재무부 장관을 거쳤다. 그가 정치 지도자로 부상한 것은 현재 가장 강력한 정치적 경쟁자이자 평화협정 반대파 지도자인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재임 시기에 핵심 보직인 국방장관으로 발탁되면서다.

현재 상원의원인 우리베 전 대통령은 2002∼2010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부친이 최대 반군 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돼 살해된 기억을 바탕으로 FARC 토벌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산토스는 국방장관으로서 군사 작전들을 지휘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5년 넘게 FARC에 납치됐던 정치인과 인질 14명을 무사히 빼내왔다. 2008년에는 이웃 국가 에콰도르에 있는 FARC 기지를 예고 없이 폭격해 FARC 고위 간부를 사살했다. 에콰도르가 주권 침해라며 외교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강경파' 산토스에 대한 지지는 높았다.

국방장관 시절 인기를 바탕으로 2010년 대선에 나선 산토스는 우리베 정부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해 역대 최고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2012년 정부와 FARC가 비밀 협상 중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며 우리베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 2014년 재선 도전 당시 '평화 협상 지속'이라는 공약으로 근소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FARC와의 평화협정은 우리베 전 대통령이 이끈 반대파의 공세 끝에 지난 2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노벨위원회는 "50년 이상 계속된 내전을 끝내려는 산토스 대통령의 확고한 노력을 인정해 노벨상을 수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국민투표 부결에도 평화협정의 취지를 지켜가라는 격려와 촉구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산토스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과 우리베로 대변되는 반대파를 포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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