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제의 필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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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예산규모는 더 줄여야 한다. 그것은 내년 예산지출사업의 타당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들 지출을 뒷받침할 재원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의 세출부문만 두고 본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확대 편성의 명분이 마냥 없는 것은 아니다. 6차5개년 계획의 첫해인 만큼 사회개발수요가 그만큼 높아졌고 복지와 후생, 농어촌 개발과 환경개선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주장할만하다.
그동안 이들 부문은 거의 대부분 경제개발과 사회간접자본, 건설, 국방과 교육 등 우선 과제들에 밀려나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되어 있다. 6차 계획을 시발로 이들 소외부문의 개발과 복지정책의 확대를 시작하려는 재정의도는 충분히 평가 받을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재정의지의 실현에는 두 가지의 전제가 서있어야 한다. 하나는 우선 정책 우선 순위의 재조정과 이에 따른 재정기능의 정비가 필요하다. 사회개발과 복지정책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여타 재정활동과의 균형문제를 야기함으로써 재정기능의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균형과 마찰의 문제는 재정구조의 개혁과 우선 순위의 전반적인 조정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다. 그 같은 개혁과 조정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복지확대는 필경 재정의 소비성향을 높이고 팽창재정으로 치닫게 만들뿐이다.
새해 예산의 세출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런 노력과 조정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음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 평소 해오던 일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고, 경직성 경비도 그대로 둔 채 복지사업만 확대하다보니 팽창예산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재정당국의 무성의 탓도 있지만 재정기능 자체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복지와 부담의 조정과정이다. 복지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했다면 그것은 납세자와 수혜자, 그리고 정부간에 새로운 비용 분담의 방향을 대체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복지재원의 조달과 비용부담의 원칙이 먼저 서있지 않으면 어떤 복지정책도 순조롭게, 부작용 없이 지속되고 정착되기 어려워진다.
새해 예산은 이런 측면에서도 충분한 대응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그 결과가 각종 기금 재원의 차용이나 석유수입 관세의 대폭적인 인상 등의 편법을 쓰게 만든 것이다. 특히 재원보충을 위한 석유관세의 대폭 인상은 재원조달의 변칙이라는 문제외에도, 국제원유가 하락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정부가 감살 시킨다는 측면, 그리고 원유가 재 상승의 가능성에 비추어 세인자체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등은 크나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입측면의 이 같은 여러 문제들을 고려 할 때 내년 예산의 확대편성은 경제의 안정에 위협을 주게될 소지를 많이 안고있다고 판단된다. 더우기 지금의 경제상황이 해외부문의 통화증발과 민간소비의 증가 추세로 통화관리의 어려움이 중첩되어 있어 재정팽창까지 가세할 경우 내년의 총수요관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회심의에서 이 같은 문제들이 다시 걸러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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