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만 같은 마음-「메마른 시대」의 명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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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은 우리의 아름다운 명절 추석이다. 삽상한 가을바람에 구름조차 밀려 가버렸는지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빛나는 계절이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있다. 벌써 시장에는 새로 거둔 햇과일과 곡식이 풍성한 계절을 축하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추석연휴가 법정 공휴일이 되어서인지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대부분의 공단에선 아예 4, 5일씩의 연휴를 잡고 근로자들의 귀성을 돕고 있다. 차례준비 보따리와 선물꾸러미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가 추석의 인심을 새삼 느끼게 한다.
추석은 이처럼 아름다운 명절이다. 우리만의 명절은 아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기는 동양의 가절 이지만 신라 이래로 2천년동안 민족의 명절로 지켜지고 있어 더욱 뜻이 깊다. 풍성한 자연속에서 수확의 기쁨을 한껏 피로했던 농경민족의 축제가 연면한 민속으로 살아온 것이다.
「1년 3백65일이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우리의 추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성한 겨레의 명절이었다.
그 풍요의 기쁨이 자연과 인간을 함께 어우러지게 한 것이 바로 추석의 참 모습이다. 힘겨웠던 농사가 이제 막 끝나고 질펀한 결실을 거두는 시점에서 자연마저 싱그러울 때 인간은 하늘의 축복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기쁨이 절로 일어나면 자연 하늘과 조상님들의 은덕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은 분명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오히려 자연과 인정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막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자기의 피땀으로 거둔 결실이라도 결코 자기의 복으로 돌리지 않고 하늘과 조상님네들의 도움에 의한 것으로 돌릴 줄 아는 겸손한 마음씨의 민족이었다.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며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 정을 나누는 것은 바로 그 징표다. 매년 되풀이되는 그 끈질긴 귀성행사는 실로 민족의 뿌리확인의 절차요, 의식이 아닐 수 없다.
「팔월보름은 아아 추석날이건만 임을 모시고 가니 오늘이 참말 한가위구나」하는 고려가사「동동」의 귀절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깊다.
이 중추가절에 우리가 키워가야 할 것은 바로 그 가족애다.
그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되고 나라사람이 되고 인간애가 될 때 우리의 기쁨은 더욱 고상해질 것 같다.
정치가 혼란되고 사회가 각박하며 인정마저 메마른 시대가 되었다는 탄식이 그치지 않더라도 이 아름다운 추석에 우리는 다시 아름답던 옛 어른들의 인정과 겸손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추석은 기쁨속에 숨겨진 참된 인간의 진실을 찾는 때이며, 자연과 조상의 은덕을 감사해야하는 때이며, 괴롭고 의로운 이웃에게 기쁨을 나누는 때라는 것을 다시 다짐해야겠다.
청량한 가을하늘처럼 우리의 마음도 티끌 없이 깨끗해지길 함께 기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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