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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과 인질 교환은 나쁜 선례 남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기자 대닐로프와 소련 유엔관리 자하로프가 각각 자국 대사관으로 석방됨으로써 지난 20일간 미소 관계를 위협했던 이 사건은 일단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 오는 11월초로 예정된 미소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19일의 미소 외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리게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완결된 것이 아니고 미국 내 여론에 따라 다시 미소관계에 중대한 장애물로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이유는 일단 냉각기를 갖기 위해 미국이 이 두 간첩혐의자의 석방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이 두 사건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슐츠 미 국무장관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소련인 자하로프는 간첩이 확실하지만 대닐로프는 자하로프와의 스파이 교환을 위해 소련 비밀경찰(KGB)이 잡아들인 인질이라고 암시했다. 슐츠 장관은 두 사람을 교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는 정부가 대닐로프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일단 자하로프와 교환석방에 합의한 것은 미소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는데 너무 비중을 둔 나머지 소련 측에 대해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여론이 일고있다. 한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이것이 지극히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고 비난했다. 그는 앞으로 미국이 소련첩자를 잡을 때마다 소련은 무고한 미국시민을 잡아 간첩혐의를 씌운 후 교환하려 들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날 발표된 미소간의 합의는 소련 KGB의 승리라고 판정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이와 같은 여론이 거세질 경우 선거를 앞둔 미 행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다시 강경 노선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대닐로프가 간첩이든 아니든 간에 레이건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간첩이 아님을 내가 보증한다』고 썼고 슐츠 국무장관도 이를 공석에서 강조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소련은 다같이 서로 퇴로가 없다.
따라서 스파이 교환이란 형식을 취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그런 결과가 되는 해결책으로 서로가 체면을 살리는 방안이 나와야만 할 것이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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