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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역조 시정 여전히 흐지부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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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최철주 특파원】10일 하오 한일 정례 외무장관 회담이 끝나자 일본의 TV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측에서 본다면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앞선다.
이번 외무장관 회담은 후지오 망언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가 되살아난 것으로 사실 정례라기 보다 특별이라는 성격을 띤 것처럼 보인다.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지난해 당시의 이원경 외무장관과 아베(안배진태랑) 일본외상이 연 1회 정도 개최키로 한 이 정례 회담은 이번이 그 첫 번째이나 후지오 망언이란 특별한 문제가 발생, 초점도 일본측의 사과문제에 쏠리는 등 특별한 회담처럼 되고만 것이다.
이 회담은 먼저 구라나리 외상의 후지오 망언에 대한 일본정부의 처리와 고토다(후등전청첨) 관방장관이 지난 8일 발표한 담화를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또 나카소네(중증근강홍) 수상, 후쿠다(복전규부) 전 수상(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 등의 사과 발언도 잇달았다.
처음 일본은 후지오 망언으로 한국정부가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자 이에 당황, 거물급 사과사절을 보낼 것을 검토했으나 한국이 후지오의 파면을 평가하고 외무장관 회담을 예정대로 열기로 결정하자 사과사절의 검토를 그만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 외무장관은 일본에 사과를 받으러 온 셈이 되고 말았다.
한일 정례 외무장관 회담은 이런 문제들로 하여 처음부터 몹시 경색된 분위기였다.
이날 1차 회담의 결과에 대해 일본의 민방들은 『일본이 한국에 진사했다』고 주요 뉴스로 보도했으나 각 신문들은 기사본문 속에만 일본정부가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고 보도했거나 또는 함구했다.
재일교포 지문날인제도 개선 등 양국간 현안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장소를 옮긴 2차 회담장(일 외상 공관)에서야 양국 대표들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2차 회담에서 한국측이 제시한 최대현안은 대일 무역역조 시정문제였다. 최 장관은 현 상태로 가면 올해의 대일 무역적자가 60억 달러에 이르러 이를 방치하면 정치문제화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구체적이고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주도록 요청하고 그 예의 하나로 현재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관서 신국제공항 건설(오사카 소재·1차 공사규모 1조엔)에 한일 합작기업이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측은 한국산 공산품이 일본에 수출될 수 있게시리 일 정부가 지원해주도록 요청했다. 한국의 심각한 대일 무역역조는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사이토(제등영사랑) 일본 경단련 회장 등 주요 재계인사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정부측에 전달, 구체적인 지원정책이 실시되도록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나카소네 수상의 방한시 선물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국측의 기본요구는 양국 경제구조 조정에 따른 보완적 수평분업실시와 한국제품이 일본시장에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지도를 제거해달라는데 있다.
실제로 엔화 강세 이후 한국제품 가격이 30∼40%이상 떨어졌으나 일본 최종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가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으며 한국제품의 수입을 저지하는 일본업계의 담합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회담에서 무역 역조문제에 대해 일본측은 『성의를 갖고 노력하겠다』고 모호하게 답변,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나카소네 수상의 방한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도록 협조할 것을 다짐함으로써 오는 20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①후지오 망언에 대한 일본측 사과 ②재일교포 지문날인제도 개선책 ②무역역조 시정 등에 대한 구체안이 거론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에스컬레이트된 반일 국민감정을 풀어주지 못한 채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강행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본 외상의 사과뿐만 아니라 적어도 나카소네 수상 선에서 큰 덩어리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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