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상회담―우리의 자세전환 보여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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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후지오 망언」으로 한일관계가 지극히 미묘해진 때에 10일부터 이틀동안 동경에서 열리는 한일외상 회담은 국민의 관심을 모으게 한다.
더욱이 이변 회담은 단순히 한일간의 현안문제를 다루는 정례적인 실무회담일 뿐 아니라 오는 21일로 예정된 전대통령과 「나카소네」 일본수상간의 정상회담에 앞선 예비회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정부가「후지오」파면과「고토다」관방장관의 유감표명 담화 등 일본정부가「후지오망언」 에 대해 취한 일련의 조치를「성의 있고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 한일 외상회담을 예정대로 열기로 한 것은 일단은 양국간의 현안을 적극적으로 풀려는 자세표명으로 볼 수는 있다.
수교 22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 사이에는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굵직한 것만 꼽아도 양국간의 무역역조시정, 지문, 교과서 왜곡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무역불균형문제는 물론외교교섭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대일 교섭자세는 너무나 미온적이고 소극적이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20년간 누적된 무역적자가 총 외채의 70%를 넘는 3백30억 달러에 이르러도 정부는 속수무책이고 그 많은 외교 교섭과정을 거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설사 일본의 주장대로 무역불균형이 양국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해도 그것은 일면적인 설명일 뿐이며 그들의 교묘하고 차별적인 각종 대한관세·비관세장벽까지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한일무역의 특혜가 아니라 차별적 장벽의 철폐여야하며 불균형의 시정을 위한 성의 있는 자세의 촉구다.
교과서 문제만 해도 다음 세대의 일본 국민이 어떤 교과서를 갖고 교육을 받는가에 대해 이웃 나라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가해국에서 침략을 미화하는 따위, 교과서를 왜곡하는 것은 단순히 피해 국민의 자존심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일뿐이 아니라 두 나라간의 선린지호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외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정을 촉구해온 것이다.
외국인 등록 때마다 실시되는 강제적인 지문채취는 뭐라고 변명을 하건 재일교포들의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배가시키는 차별정책이다.
재일동포의 대다수가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끌러간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라는 사실은 새삼 지적하는 것이 쑥스러울 지경이다. 그런 앞뒤 사정을 뻔히 알면서 지문채취를 고집하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편견과 무성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국가간의 관계는 감정을 앞세워서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후지오 망언」으로 외상회담 연기통고를 해놓은 지 단 하루만에 이를 번복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변화는 아무래도 모양이 좋지 않다.
거듭 지적하지만 우리는「후지오망언」에서 표출된 일본인의 오만한 강자의식에 깊은 우려와 함께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복고조 무드가 일본인의 의식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이상 외상회담을 통해 그들이 어떤 양보를 할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경회담에서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이나 진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나카소네」 의 방한도별 의미가 없다.
국민감정을 도외시한 외교는 근본이 없는 굴욕외교란 비난을 받기 쉽다. 대일외교에서 대담한 자세전환을 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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