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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 ② “슬리퍼 끌고 간 동네 피자집, 맛은 본토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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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은 골목 안에 있더라

디자이너 요니 P(배승연)의 ‘브레라’

“슬리퍼 끌고 간 동네 피자집, 맛은 본토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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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라’는 직원도 손님들도 외국인이 대다수라 영어로 주문하는 풍경이 낮설지 않다. 직원 10명 중 이탈리아인이 5명, 한국인은 3명에 불과하다. 강정현 기자

메뉴판은 이탈리아어, 주문은 영어로
이탈리아인 사장의 과하지 않은 관심 편해
윤승아·김무열 배우 커플도 인정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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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근처로 1년 전쯤 이사를 왔다. 집 정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될 무렵, 동네 탐방에 나설 때마다 유독 한 눈길을 끄는 한 곳이 있었다. 늘 식사 시간 무렵이면 그 앞에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빨간색 동그라미 간판에 ‘브레라(Brera)’라고 쓰여 있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사람이 본토 맛으로 승부하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다지만, 내게는 그저 동네 식당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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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동네 펍을 닮은 ‘브레라’. 큰 창을 내 채광을 제대로 활용한 인테리어와 칠판을 이용한 와인 리스트 안내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호기심에 처음 그곳에 들르긴 하면서도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우리집 대문을 열고 나가 2분 거리에 있다는 게 그 식당을 찾은 이유였다. 하지만 웬걸. 맛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상상초월이었다. 서울 시내에 널리고 널린 게 피자집이라지만 이곳은 단연 최고였다. 무엇보다 담백했다. 늘 뭔가를 더하고 얹는 보통의 피자와는 달랐다. 오히려 하나쯤 덜어낸 맛이 혀를 자극했다. 처음 가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으로 등급을 정하는 것처럼, 일단 기본으로 시킨 마르게리타 피자부터가 그랬다. 담백함의 극치였다. 반죽이 얇은 피자는 위에 얹은 토마토 소스가 스며들어 금세 눅눅해지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이곳의 피자는 마지막 조각이 입에 다 들어갈 때까지 바삭함을 유지했다. 가지 라자냐 역시 절제가 있었다. 치즈를 무작정 듬뿍 넣기보다 소스와의 비율을 기가 막히게 맞춰 느끼함이 없었다. 너무 물컹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가지의 식감은 이 맛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만이 인정할 맛이다. 여기에 와인을 즐긴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메뉴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했다는 살라미햄과 치즈 플레이트 메뉴다. 그야말로 안줏거리로 딱이다. 나무판에 무심하게 얹었는데도 자꾸 손이 간다. 하지만 내가 이 집에서 강추하는 먹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식전빵이다. 절대로 배부를까 싶어 미리 자제하지 말 것. 블랙 올리브를 으깬 페이스트를 발라 먹는 바게트는 이집에서 반드시 맛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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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니 P의 추천 메뉴. 마르게리타 피자(왼쪽)는 담백하면서도 치즈와 토마토소스의 완벽한 조화를 자랑한다. 블랙 올리브를 으깬 페이스트를 발라 먹으면 최고의 맛을 내는 식전빵도 권한다. 강정현 기자

이런 이유로 한식 매니어이자 보통 피자를 두 쪽이상 먹지 못하는 나도 이곳에선 피자 반 판 정도는 너끈히 먹는다. 1년 전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은 브레라의 피자를 먹는데 전혀 질리지 않는다. 동네 산책을 나왔다가 남편과 맥주 한 잔을 하고 가기도 하고, 집들이를 핑계 삼아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초대할 때도 이곳의 음식을 테이크아웃해서 자신있게 내놓는다. 그렇게 브레라를 경험한 30여 명도 이 곳의 맛을 다들 인정했다. 청담동 고급 레스토랑을 섭렵한 미식가 지인들 역시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리곤 한다. 그중에는 이탈리아인 사장을 섭외해 청담동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심각하게 말하는 이도 있었다.

테이블 20여 개의 브레라 분위기는 한 마디로 영국 런던 유학 시절 맛 본 어느 골목 모퉁이의 펍과 비슷하다. 무심한듯한 인테리어나 왁자지껄함, 때로는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과 섞여 대화를 나누는 소박함 등이 말이다. 실제로 여기에 갈 때는 청담동·한남동에 갈 때처럼 옷차림에 신경쓸 일이 없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랄까. 가끔은 외국에 온 듯 하기도 하다. 메뉴판도 이탈리아어인 데다(정말 발음하기 힘들다), 홀 직원 다수가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당연히 주문은 영어로 해야 한다. 게다가 쳐음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손님 열 명 중 여섯은 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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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동네 펍을 닮은 ‘브레라’. 큰 창을 내 채광을 제대로 활용한 인테리어와 칠판을 이용한 와인 리스트 안내가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 점이 내가 이곳을 자꾸 찾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주인이나 손님이나 외국인이기에 나름 얼굴이 알려진 나를 특별하게 보지 않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 패션지 편집장, 스타일리스트 같은 트렌드 세터들은 물론 윤승아·김무열 배우 커플처럼 친한 연예인들이 우리 동네에 올 때 종종 이곳에 ‘모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명인과 가더라도 다른 식당처럼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 달라는 요청이 없다. 우리는 그저 손님일 뿐이다!

물론 자주 들락거리다보니 주인이 나를 단골로 알아보긴 한다. 하지만 서로 딱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서로 미소를 교환하지만 거기까지. 참,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날 그곳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SNS에 사진을 올리고는 해시태그(#)로 브레라를 넣었다. 그것을 본 주인이 팔로워 신청을 했고, 내가 수락하자마자 그 포스트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난 유명해(I’m famous)!’. 온라인에선 그런 익살을 떨었지만 정작 그 다음 우리가 식당에서 만났을 때 대화가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 과도하지 않은 관심과 친절이 나는 좋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동네 식당이다. 그 의미는 주변에 다른 볼거리 먹거리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고, 주차할 곳도 없다는 말이다. 기다리는 게 싫다면 오후 6시쯤 이른 저녁을 노릴 만하다. 이후에는 줄을 서긴 하지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정도는 아니니 허탕칠까 불안해 하지는 않아도 된다.

브레라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366-440 (다산로 41)
● 전화 : 02-2236-0770
● 영업시간 : 오전 11시30분~밤 21시30(라스트오더), 월요일은 휴무
● 주차 : 매장 맞은편 건물에 가능하지만 매우 협소
● 메뉴 : 마르게리타 피자(1만4900원), 가지 라자냐(1만4900원), 살라미 햄& 치즈 플레이트(소는 1만9800원, 대는 2만9800원)
● 드링크 : 하우스 와인(잔 5000원, 병 2만5000원)

이주의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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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니 P
패션 디자이너. 2006년부터 남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스티브 J 앤 요니 P’를 이끌고 있다. 런던 유학파답게 유럽 감성의 독창적 디자인을 내세운다. 금발 염색과 진한 아이라인은 굶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시그너처 스타일. 이효리·노홍철·이천희 등 스타들과의 탄탄한 인맥으로도 유명하다.

자랑질과 허세가 난무하는 인증샷 시대다. 지금 이 순간도 SNS엔 끊임없이 일상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소셜미디어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가 2010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SNS에 올라온 인증샷을 분석했더니 맛집(4만 6017건)이 여행(11만 8632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경험’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디 가서 먹고 노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 남에게 과시하려는 노출 욕망은 결국 다른 이의 삶을 훔쳐보려는 관음적 욕망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맛집이야말로 그렇다.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오늘(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이번 주엔 패션 디자이너 요니 P와 정신과전문의 윤대현(서울대) 교수, 모델 이현이,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가 본인의 개성은 물론 직업적 특성까지 드러낸 독특한 맛집 칼럼을 보내왔다.
의도치 않게 이들의 추천 맛집 리스트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의 외식문화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첫 회에 등장하는 맛집 4곳 중 2곳이 각각 이탈리아와 남아공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처럼 다양한 미식을 선보일 수 있는 도시라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안혜리 부장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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