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 ① “단체 손님에게 돈 더 받는 ‘거꾸로’ 식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궁금하다 그들의 맛집

기사 이미지

디자이너 요니 P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불과 2분 거리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 ‘브레라’를 찾았다. 그저 동네 피자집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최고의 맛집이었다고. 이곳을 아지트 삼아 친구들과 모임을 갖기도 한다. 강정현 기자

| 맛은 골목 안에 있더라

정신과 의사 윤대현의 남아공 음식점 ‘브라이 리퍼블릭’

“단체 손님에게 돈 더 받는 ‘거꾸로’ 식당”

기사 이미지

모순되는 말같지만 맛있다고 맛집이 아니다. 요즘은 멋과 분위기까지 합격점을 받아야 맛집 대접을 받는다. 윤대현 교수에겐 이태원 ‘브라이 리퍼블릭’이 그런 곳이다. 김경록 기자

자연 스러운 친절, 추가 비용 아깝지 않아
외국인 사장, 남아공 바캉스 느낌은 덤
수제 소시지·미트파이 램은 매력 넘쳐

기사 이미지

병원 식구들과 회식을 하려고 맛집을 찾던 중에 이태원에 있는 남아공 음식점 하나를 추천받았다. 남아공 주인이 하는 집인데, 양고기 요리가 특별하다고 했다. 원래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냄새가 없어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들 좋아한다는 설명이었다. 괜찮겠다 싶어 추천한 이에게 8명을 예약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뿐 아니라 직원 모두 외국인이라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예약을 부탁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 예약이 됐다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단체 손님이라 서비스 비용으로 음식가격에 10%를 추가한다는 내용이 함께 있었다. 단체 손님 10% 할인이란 내용을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 문자를 다시 확인했지만 역시 ‘할인’이 아닌 ‘추가’였다. 헐~. 단체로 가면 할인을 해 주고 서비스 음식까지 내주는 게 상식인데 거꾸로 10%를 더 지불하라니, 장사가 잘 되어 배가 부른 집이구나 싶어 얹잖은 생각까지 들었다.

기사 이미지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앉은 남아공 출신의 크리스 트루터 사장.

가보니 실제로 장사가 잘 되는 집이었다. 대표 메뉴는 ‘미트플래터’. 양갈비·소시지와 사이드 메뉴로 으깬 감자와 코울슬로, 그리고 크리미한 시금치가 함께 나왔다. 소문대로 맛이 있었다. 양갈비에 저항감을 갖고 있던 직원도 “맛있다”면서 잘 먹으니 쏘는 사람 입장에서 성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당하게 잘 익어 잘 썰리고 입에 잘 녹아 들어갔다. 직접 만들었다는 식감 좋은 소시지도 함께 곁들인 남아공 맥주와 와인에 정말 잘 어울렸다. 서빙을 하는 직원이 유독 소시지는 빨리 먹으라고 권했다, 수제 소시지라 시간이 지나면 바깥이 말라 버려 맛이 없어진다는 말에, 열심히 소지지를 흡입했다. 와인을 피쳐 형태로도 팔아 꼭 병으로 마셔야 하는 부담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시그니처 메뉴인 미트플래터도 상당히 괜찮았지만 나는 ‘미트파이 램’에 더 매력을 느꼈다. 사과파이에 사과가 들어가는 것처럼 이 파이엔 양고기가 소스와 함께 잔뜩 들어가 있는데, 파이의 빵부분에 양고기 잼을 바르듯 함께 먹으니 별미였다.

기사 이미지

이태원 골목 멀리서도 보이는 건물 외관의 ‘브라이 리퍼블릭’ 간판.

식당 이름인 브라이(braai) 뜻을 찾아 보니 바비큐 파티이다. 날씨 좋은 남아공에선 대부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고 한다. 내가 앉은 테이블 주위에 앉은 금발의 외국인들과 섞여 식사를 하니 내가 남아공에 여행와서 양갈비·소세지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우리 마음은 이렇게 종종 현실과 환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를 보고 울고 웃고 감동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영화는 허구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때론 허구의 환상이 주는 느낌이 더 리얼하다.

남아공에 가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것도 물론 멋지겠지만 긴 비행시간으로 인한 피로와 여행 경비 같은 비용적 요소까지 고려하면 만만치 않다. 투자하는 비용만큼 기대치가 오르는 것이 마음의 법칙이기에 웬만큼 멋진 바비큐 파티를 경험하지 않고는 차라리 한국에서 먹는 삼겹살이 더 낫다고 투덜거질 지 모른다. 비행기 탈 필요 없이 갈 수 있는 이태원 여행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다.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이 자유라고 한다. 여행의 욕구는 나를 얽어 매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마음은 자유로워질 때 재충전이 일어나고 다시 현실에서 열심히 일할 힘을 얻는다. 마음이 지쳐 있을수록 더 먼 곳으로 여행 가고 싶어 진다. 자유를 향한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곳으로의 해외 여행이 항상 더 큰 자유를 주는 건 아니다. 마음만 더 지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 10분, 점심 때 짬을 낸 나만의 산책 시간도 훌륭한 바캉스가 될 수 있다. 주말에 내 마음을 공감해 줄 좋은 벗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태원의 맛집을 찾는 것 비용 대비 아주 훌륭한 바캉스 여행이 아닐까 싶다.

기사 이미지

남아공 맥주와 사이다를 비롯해 보통 레스토랑에 없는 다양한 음료가 많다.

음식도 맛있고 사장과 직원 친절해 병원 식구들과 함께 한 짧은 남아공 여행을 잘 끝낼 수 있었다. 처음의 얹잖았던 마음은 사라져, 친절 비용이 추가된 음식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라는 감성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의 표시를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같다.

기사 이미지

셰프와 종업원 뿐 아니라 손님도 외국인이 더 많이 보인다.

친절이 서비스상품화 되다 보니 감성노동에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원래 친절은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저 사람이 나에게 친절하니 나도 자연스럽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친절사회에선 상대방이 친절하건 말건 인공적으로 친절한 감정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친절사회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사람의 감성을 돈과 권력 같은 사회적 파워로 쉽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속물적 접근일 것이다. ‘내가 돈 많고 힘도 갖고 있으니 저 사람은 나에게 친절해야 해’라는 생각은 상대방의 감성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내 마음 역시 딱딱하게 굳게 한다. ‘기계적인 친절이 싫다’는 말은 ‘진짜 친절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내가 진심으로 친절해야 상대방의 진짜 친절도 맛 볼 수 있다.

브라이 리퍼블릭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63-4 (이태원로14길 19)
● 전화 : 070-8879-1967
● 영업시간: 평일 오후 5시~밤 10시(라스트오더 9시), 주말 낮 12시~밤 11시(라스트오더 9시30분)
● 주차 : 용산구청 등 근처 유료주차장 이용
● 메뉴 : 미트플래터(3만3000원), 미트파이 램(1만 2000원), 양갈비 (1조각 8000원), 소시지(양·소·돼지 혼합은 6000원, 돼지는 5000원)
● 드링크 : 남아공 맥주(castle larger 6500원), 애플 사이다(7000원), 와인(잔 6000원, 500ml 1만5000원, 1L 2만8000원)

이주의 식객

기사 이미지
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라이프스타일 의학과 문화힐링에 관심이 많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 마음 속엔 음식이 주는 쾌감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 그리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픈 공감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도 늘 새로운 맛집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자랑질과 허세가 난무하는 인증샷 시대다. 지금 이 순간도 SNS엔 끊임없이 일상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소셜미디어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가 2010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SNS에 올라온 인증샷을 분석했더니 맛집(4만 6017건)이 여행(11만 8632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경험’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디 가서 먹고 노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 남에게 과시하려는 노출 욕망은 결국 다른 이의 삶을 훔쳐보려는 관음적 욕망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맛집이야말로 그렇다.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오늘(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이번 주엔 패션 디자이너 요니 P와 정신과전문의 윤대현(서울대) 교수, 모델 이현이,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가 본인의 개성은 물론 직업적 특성까지 드러낸 독특한 맛집 칼럼을 보내왔다.
의도치 않게 이들의 추천 맛집 리스트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의 외식문화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첫 회에 등장하는 맛집 4곳 중 2곳이 각각 이탈리아와 남아공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처럼 다양한 미식을 선보일 수 있는 도시라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안혜리 부장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