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마음을 공유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기사 이미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30년지기 친구와 오랜만에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공통 관심사인 교육 등의 거창한 주제에 대한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이성적 논쟁 뒤에 가정과 직장의 개인적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친구의 푸념이 나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친구의 생각에 나는 시비를 걸지 않고, 그저 친구의 이야기를 하나씩 받아들인다. 내가 아니면 어디 가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고, 나에게 그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 고맙다.

죽어가는 택시기사 두고 골프채 챙겨 떠난 부부
무한경쟁 속에 인간의 공감 능력은 힘 잃고 있어

마음은 얼핏 하나의 존재 같지만 거기에는 두 기능이 함께 깃들어 산다. 이성의 능력이 있어 세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따지며, 현명하게 대처하여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이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삶의 유한함에 번민하기도 한다. 서로의 느낌을 나누고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면서 서로 간의 유대를 이뤄 나간다.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마음의 다채로움 덕에 과학적 탐구에 예술과 종교가 곁들어져 삶은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지나치게 질퍽하지도 않은 균형을 이룬다.

4차 산업혁명이 문을 두드리는 접속의 시대 우리네 마음을 이루는 이성과 감성은 어떻게 진화되고 있을까? 세상의 정보를 수합하고 이로부터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이성의 영역은 두뇌를 넘어서서 점차 외부로 확장해 나간다. 10~20년 전만 하더라도 50~60개를 기억하던 전화번호 수는 이제 10개 내로 줄어들었고, 내가 사는 동네의 지리적 정보는 더 이상 내 소관 사항이 아니다. 휴대전화와 내비게이션과 같은 단말기가 이전에 나의 두뇌가 하던 일을 대신한다. 이성적 판단이 단말기로 이양되면서 공유의 영역도 늘어난다. 내가 갖고 있는 단말기는 클라우드를 통해 인터넷상의 다양한 정보의 바다와 연결되고, 온갖 SNS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이웃에 대한 근황을 속속들이 전해준다. 내가 입력한 알량한 정보뿐 아니라 사이버상의 온갖 정보와 체계가 나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 정보는 나와 당신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영역이며, 그만큼 우리의 행위는 공동의 영역에 의해 영향을 받고, 결국 우리는 함께 마음을 공유하는 셈이다.

인터넷 하이웨이를 통해 정보가 원활하게 교류되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시스템의 중심을 차지하며 이성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시대, 감성도 그렇게 공유되고 있는가? 인간은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이해로부터 느낌을 공유해가는 공감의 동물이라고 한다. 정보가 공유되고 서로 간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만큼 서로 간의 공감대가 그만큼 확장될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간다.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택시기사를 방치하고 골프채를 챙겨 떠나는 부부의 비정함, 흔한 노인 고독사, 사소한 운전 시비로 인한 무자비한 폭력 등의 이야기가 일상사가 되어 간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이제 더 잘 알려지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는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가속화되어 가는 무한경쟁 속에서 비난과 냉소는 힘을 얻어 가고, 인간의 공감 능력은 힘을 잃어 간다.

되돌아보면 친구와의 만남에서 공감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나누었던 도시락, 같이 떠난 여행에서의 다툼, 가족사의 슬픔을 겪는 중에 함께 나누었던 경험들이 양분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의 문자화된 정보는 공감의 토양이 되는 체험을 대체할 수 없다. 공감 능력은 젖을 주며 보내는 어머니의 눈빛, 부모가 이웃과 나누는 대화·몸짓 같은 부모와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3세가 되기 이전에 기본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공유된 삶과 체험들, 일인칭적 체험들이 여기에 더해져 감성이 풍부해지고 공감과 배려는 자라난다. 어린이집에 맡겨지고 게임기와 소통하는 아이들이 부모와 가까워지고, 청소년들이 학원의 울타리를 넘어 함께 뛰고, 어른들은 휴대전화에서 머리를 들어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삶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