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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보이지 않는 컬래버레이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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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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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얼마 전 한 출판사로부터 새로운 출간기획을 제안받았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지금 맡은 일들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라 다음 번에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고 메일을 보냈다. 얼마 뒤 또 다른 편집자로부터 비슷한 제안이 왔다. 같은 출판사의 다른 부서였다. 앞의 편집자가 뒤의 편집자에게 내 상황을 전달해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또 정성스레, 혹시나 편집자의 마음이 상할까 최대한 중립적인 언어로 완곡한 거절의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몇 주 뒤 또 다른 메일을 받았다. 또 같은 출판사였다. 무려 세 번의 출간기획이 ‘같은 출판사’에서 ‘다른 편집자’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그제야 그 커다란 출판사에 ‘부서 간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저히 부서별로 업적을 평가하기에 한 출판사 안에서도 부서 간 협력보다는 경쟁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진짜 문제점은 ‘각자의 열심’이 ‘모두의 성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쪽 부서의 장점을 이쪽 부서에서 활용할 수 없게 되고, 100개의 부서에서 1000개의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렇게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서 이기주의,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상태를 ‘사일로 이펙트(Silo Effect)’라 한다. 질리언 테트의 『사일로 이펙트』에는 바로 이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추락한 대기업 소니의 사례가 나온다. “저희 집에는 소니의 전자기기가 35개 있습니다. 배터리 충전기도 35개 있고요.” 그 모든 소니 제품이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충전기를 가지고 있었다니. 이런 부서 간 이기주의는 소니라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반대로 이 ‘분산화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 이들은 엄청난 성과를 경험하고 있다. 살인사건의 급증으로 몸살을 앓던 시카고 경찰은 각 지역에 흩어진 범죄 관련 정보를 통합하는 빅데이터 지도를 개발해 어느 지역에서 다음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해냈다. 구글은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자주 부딪히도록 공간 배치를 창의적으로 바꾸어 기업문화를 바꾸었다.

이 분산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일단 ‘아직 보이지 않는 컬래버레이션’을 상상하는 것이다. 예컨대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사뿐 아니라 책의 유통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과 협업해야 하고,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과도 보이지 않는 컬래버레이션을 실천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자들의 꿈, 그들의 감정과 의견까지도 소통해내야 한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뿐 아니라 10년 후, 100년 후의 독자와도 협업을 해야 한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함께 진정으로 협동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좋은 책이다. 돌아보니 나는 나와 관계없는 모든 존재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도움까지도, 나는 매순간 공기처럼, 햇살처럼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각각이 지니고 있는 능력, 즉 ‘하나씩의 별’은 훌륭하지만 그 모두를 모아 ‘커다란 별자리’를 그리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움 받을 용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일시적으로는 미움 받더라도 장기적으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커다란 협업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아들러가 실제로 가장 강조한 것은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니라 ‘협업’의 소중함이었다. 예컨대 성격이 나쁜 한 사람이 기업 전체에 끼치는 악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나쁜 성격이 암묵적으로 용서받는 문화가 바로 사일로 이펙트를 만들어내고, 기업 전체의 분위기에 커다란 해를 끼친다. ‘미움 받을 용기’도 좋지만, 자칫 미움만 받다가 끝나버릴 위험도 있다. 다른 부서는 물론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종횡무진의 창조적 사유를 꿈꾼다면, 우리는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 여자이면서도 남자인 양성적 사고, 어린이이면서도 노인인 다차원적 사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하나씩의 별’이다. 그 ‘하나씩의 별’로 ‘위대한 별자리’를 만드는 더 커다란 관점의 전환, 더 깊은 사유의 전환이 절실한 요즘이다.

정 여 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