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말 많던 단식…비박 “전략·전술 모두 실패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사 이미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난달 26일부터 새누리당 국회 당 대표실에서 단식해 왔던 이정현 대표가 7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2일 오후 박명재 사무총장, 염동열 수석대변인, 김광림 정책위의장, 정진석 원내대표, 조원진 최고위원(왼쪽부터) 등이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되는 이 대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오상민 기자]

2일 오후 5시 이정현 대표의 ‘무조건 단식 중단’ 선언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지난달 28일 이정현 대표가 “나 혼자 단식투쟁을 할 테니 29일부터 국정감사에 의원 전원이 복귀해 달라”는 제안했을 때는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을 포함해 70여 명이 “마음대로 국감 복귀를 결정하느냐. 무조건 돌격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당시 국감 참여파는 나경원·정병국·권성동·하태경 등 비박계 의원 4명뿐이었다.

여당 ‘빈손 회군’만든 결정적 장면들
김재수 해임 관련 당내 지침 없고
성급하게 정세균 사퇴 요구 초강수
국감 복귀는 친박 강경파에 막혀

하지만 이날 의총 분위기는 달랐다.

▶정진석 원내대표=“국회의장의 중립적이지 못한 일탈행보를 바로잡아 의회주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민의 뜻이지만 국정감사 일정을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민생을 챙기라는 것 또한 국민의 뜻이다. 국민의 뜻에 우리는 순명(順命)해야 한다.”

이에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발언자 자체가 6명에 불과했고 강도도 약했다.

▶박대출 의원=“지도부가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생과 국정을 책임지는 ‘투 트랙’으로 가자는 데 이의가 없다. 다만 일주일 만에 꼬리 내리는 무력한 모습으로 남게 된다면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다. 정세균을 의장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홍문표 의원=“전략·전술 모두 실패였다. 무의미한 투쟁을 일주일간이나 했다는 게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목적이 있으면 반타작이라도 해야 하는 데 무엇을 얻었나. 대선까지 이런 상황이 수십 번 있을 텐데 이런 전략·전술론 갈 수 없을 것이다.”

원내지도부는 아예 추가 발언신청을 받지 않았다. 결국 의총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박수와 함께 만장일치로 국감 복귀안을 추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달 26일 시작된 사상 초유의 집권 여당 대표의 단식 농성과 국정감사 보이콧 투쟁은 7일 만에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기사 이미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어머니 장귀옥(82)씨가 2일 전남 곡성군 동암리 자택에서 몸져누운 채 “아들이 굶는데 밥이 넘어가겠느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뒤쪽은 아버지 이재주(86)씨. [프리랜서 오종찬]

이날 낮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를 찾아와 “이정현 대표를 강제로라도 입원시켜야 한다. 국정이 장기 표류하는데 여러모로 걱정이 많다”고 발언한 게 박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전략·전술은 물론 실익도 없는 투쟁을 벌였다는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의총 후 “우리가 사태를 돌이킬 몇 차례 결정적 장면이 있었지만 지도부의 전략 부재로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비박계 의원들이 지적하는 전략 부재 장면은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을 처리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원내지도부로부터 본회의 당일 오전까지 해임안을 막겠다거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어떤 대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곧바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해 야당이 반발할 상황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성급하게 정세균 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당 대표의 단식과 국정감사 거부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당시 이정현 대표는 ‘나 혼자 단식을 하고 국정감사는 들어간다’는 투 트랙을 얘기했지만 최고위원들이 거부했다고 하더라”며 “지난달 28일 의총이 분위기를 되돌릴 기회였는데 강경파가 고함치며 욕까지 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는 “우리가 (국감 보이콧 등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야당의 반발과 공세에 고스란히 직면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글=정효식·채윤경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