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재발해도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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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정의 절제 없는 신년예산
내년 예산 15조5천8백억 원은 한마디로 너무 많다. 내년에는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짐작은 가지만 재정은 형편에 맞게 꾸리는 것이 언제나 변함없는 정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년은 어느 모로 봐도 세인전망 올해보다 크게 나아질 턱이 없다. 정부 스스로 세입 증가율을 11%도 안되게 전망하면서 어떻게 13%의 세출 증가를 무릅쓸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세입전망이 분명치 않은 채 늘려 잡은 예산은 언제나 무리와 부작용을 함께 불러온다는 것은 오랜 재정경험에서 익히 보아 온 터이다.
13%의 예산팽창은 지난5년에 비해 최대 규모의 증가율로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인플레를 자극할 수 있으며 동시에 국민일반의 인플레 기대 심리마저 자극할 만한 수준이다.
더구나 그것이 적정한 조세수입의 뒷받침도 없이 이루어지는 지출이라면 그 부작용은 더 커질 것 또한 분명하다.
재정의 절제가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현재의 과잉 류 동성이다. 올해 총통화를 18%쫌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조차도 지금현재 위협받고 있을 만큼 작금의 통화팽창은 어려운 지경에 와 있다.
다른 요인도 많지만 우선은 금용 여신이 그동안 너무 많았던데다 2·4 분기이후에는 국제수지 개선에 따라 해외 부문마저 급격한 통화팽창 요인으로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통화공급 패턴은 하반기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 이 문제가 하반기 경제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돼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통화관리의 어려움이 결과적으로는 민간부문에 대한 심한 자금압박으로 나타날 공산이 매우 큰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만약에 정부가 하반기에 통화를 제대로 수속한다 해도 그것은 민간의 깊은 주름을 전제로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반기 통화와 인플레수습이 성공하든 못하든 간에 재정 쪽은 긴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구나 예산지출 증가의 상당부분이 투자 적 지출보다는 경직경비와 민생관련의 소비적 지출이 훨씬 많은 점에 비추어 예산팽창의 부작용은 생각이상으로 광범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내년 예산은 수년동안 애써 다져 온 안정기조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압축돼야 할 것이고 아마도 그 기준은 정부가 내다보는 세입전망인 11%선 내외가 바람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집권당으로서는 정책사업이 다다익선이겠지만 민생과 복지는 언제나 그 부담과의 형량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때문에 일거에 여러 복지 사업을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생각은 무리를 낳기 쉽다.
민생과 복지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착실하게 다져 간다는 자세가 더 바람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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