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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도 민란 일어난 현장, 소면 공장 많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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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슈의 다도해 아마쿠사·시마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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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미나미시마바라 코스의 양상추 밭 전경. 해안 구릉을 따라 드넓은 밭이 펼쳐져 있다.

지도를 보기 전에는 두 지역의 거리가 짐작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은 아주 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태백과 봉화는 태백산 자락에 걸친 윗동네와 아랫동네다. 일본 규슈(九州)에도 그런 지역이 있다. 행정구역은 구마모토(熊本)현과 나가사키(長崎)현으로 나눠져 있지만(‘현(縣)’은 우리의 ‘도’와 같다), 구마모토현의 아마쿠사(天草)시와 나가사키현의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시는 바로 옆 동네다. 아리아케(有明)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두 고장은 바다를 비롯해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일본에서 가장 아픈 역사도 나눠 갖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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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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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시마바라시 세토즈메자키 등대.

규슈 지도를 보자. 구마모토현 왼쪽으로 긴 반도가 불거졌고, 크고 작은 섬이 줄지어 있다. 120여 개 섬을 거느린 아마쿠사 제도다. 아마쿠사 제도 맨 왼쪽에 있는 큰 섬이 시모시마(下島)고, 시모시마에서 가장 큰 도시가 아마쿠사시다. 아마쿠사시에서 아리아케 바다를 건너면 나가사키현의 시마바라(島原) 반도다. 시마바라 반도 남쪽에 있어서 미나미(南)시마바라시다.

아마쿠사시에서 구마모토현청이 있는 구마모토시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거리고, 미나미시마바라시에서 나가사키현청이 있는 나가사키시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30분 거리다. 반면에 아마쿠사시와 미나미시마바라시는 뱃길로 30분 거리다. 현재 소속은 다르지만, 두 고장은 예부터 생활 공동체였다. 아리아케 바다에서 길어 올린 해산물을 나눠 먹는 사이였고, 규슈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소외된 고장이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기독교가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지역이었고, 그 때문에 일본 역사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현장이었다.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이라는 역사가 있다. 아마쿠사 제도와 시마바라 반도의 농민이 힘을 합쳐 일본 정부와 맞섰던 민란으로 1637년 발발했다. 농민군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던 까닭에 종교전쟁으로 해석된다. 일본 역사에서 기독교 세력이 정부와 맞선 유일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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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 시로의 초상화.

당시 농민군 총대장이 열여섯 살 소년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郞·1621∼1638)였다. 시로는 예언이 구원자로 점찍은 인물로 수시로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 신비로운 이미지 덕분에 현재 시로는 아마쿠사·시마바라 지역의 홍보대사처럼 활용되고 있다. 동상은 물론이고, 시로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 그림이 수두룩하다. 화장실 문에도 시로가 그려져 있고, 과자 봉지에서도 시로가 웃고 있다.

농민군의 최후 항전지가 시마바라 반도에 있는 하라(原)성이다. 정부군은 하라성에서 농민군 3만7000여 명 전원을 학살했다. 농민군이라고 하지만 3분의 2가 노인·어린이·여자였다. 하라성은 지금도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요즘에도 종종 유골이 발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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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아마쿠사시에 있는 아마쿠사 시로 메모리얼 홀.

가미(北)아마쿠사시에 있는 아마쿠사 시로 메모리얼 홀과 하라성 근처에 있는 아리마 크리스찬 유산 기념관에서 농민전쟁의 전개과정과 기독교 탄압사를 확인할 수 있다. 하라성을 비롯한 일대의 기독교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이다.

소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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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시마바라시의 대표 음식 소면.

아마쿠사·시마바라 일대는 한국의 기독교 성지순례 전문 여행사가 단골로 찾는 지역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가볼 만하다. 아리아케의 청정한 바다를 두르고 있고,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 운젠(雲仙) 온천도 지척에 있다.

무엇보다 걷기여행을 즐긴다면 일부러라도 가보길 권한다. 규슈올레 17개 코스 중에서 4개 코스가 모여 있다. 아마쿠사 제도에 이와지마(維和島)·마츠시마(松島)·레이호쿠 코스 등 3개 코스가 있고, 지난해 12월 미나미시마바라 코스가 개장했다.

이 중에서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를 추천한다. 미나미시마바라시 남쪽 하야사키(早崎) 반도에 조성한 10.5㎞ 길이의 올레길로, 전형적인 바당올레(바다올레)다.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어 걷는 내내 바다가 내다보인다. 해안에 홀로 선 하얀 등대도 인상적이지만, 해안 구릉지대에 펼쳐진 양상추 밭이 기억에 또렷하다. 지금은 양상추를 수확한 뒤여서 붉은 흙이 훤했다.

‘이루카(いるか) 워칭’은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대표 관광상품이다. 이루카가 돌고래란 뜻이니 돌고래 관찰 투어다. 아마쿠사시의 오니이케(鬼池) 항구와 미나미시마바라시의 구치노츠(口之津) 항구 모두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리아케 바다에 300마리가 넘는 야생 돌고래가 살고 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투어에서 돌고래를 볼 확률이 90% 이상에 이른다. 어른 2500엔(약 2만5000원).

미나미시마바라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소면(素麵)의 고장이다.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에 300개가 넘는 소면 공장이 있다. 70% 이상이 가족 기업이다. 원래 나가사키현은 짬뽕이 유명하지만, 미나미시마바라시만 소면이 우세하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아마쿠사·시마바라 난이 진압되자 일대는 폐허가 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시코쿠(四國) 쇼도시마(小豆島)의 주민을 폐허가 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쇼도시마에서 사람들이 건너온 시점과 400년 전통이라는 미나미시마바라 소면의 역사가 겹친다. 쇼도시마는 예부터 밀농사를 짓던 고장이다. 이틀에 걸쳐 4차례의 건조와 숙성을 거쳐 완성한다는 소면은 지름이 0.5㎜였다. 이 얇은 면에서 탄력이 느껴졌다. 진가와(陣川) 면공장에서 소면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 여행정보

아마쿠사시 오니이케항에서 미나미시마바라시 구치노츠항까지 하루 7번 여객선이 왕복 운행한다. 어른 360엔(약 3600원). 자동차를 실을 수 있다. 차량 길이 3m 미만 1500엔(약 1만5000원). 규슈 자유여행은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여행박사’를 비롯한 국내 여행사에서 렌터카를 예약할 수 있다. 렌터카에 한국어가 지원되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돼 있다. 올 12월 25일까지 규슈 지역의 고속도로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규슈 익스프레스 패스가 판매된다. 3일권 4500엔(약 4만5000원).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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