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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무엇이 볼만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립중앙박물관이 7천5백여점의 유물을 현대적 시설 속에 전시하면서 중앙청에서 새시대를 열었다.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박물관장)는 21일 새박물관을 돌아보고 「박물관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를 소상히 설명한 글을 썼다.
한국민족이 강조한 아름다움과 슬기· 긍지를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을 4시간동안 4km 가까이 걸으며 살펴보았다.
중앙홀이 있는 2층의 왼쪽 모퉁이에 있는 비디오실에 먼저 들어갔다. 새로 꾸민 국립중앙박물관의 안내실인 셈이다. 박물관 전체규모와 전시실 배치및 관람순서등을 종합적으로 스크린에 비추는 영상과 안내문등을 볼수있다. 2층에는 이 방을 비롯하여 모두 11개실이 있다.
선사실은 30만년전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갖가지 형태로 진열·전시되어 있다. 해설문과 사진과 유물이 생동감있게 전개되었다.
관람객들이 노트에 메모할수 있도록 진열장 앞에 판대를 마련한 것은 아주 좋은 착상이다.
신석기시대의 살림집 모형은 선사시대 생활상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세번째 방이 되는 기획전시실(1)에는 조선통신사전이 열리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 이후인 1607년부터 1백94년간 (180l년까지) 12차례나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의 모습과 각종 자료 89점을 전시하였다.
고구려실과 백제실의 규모와 내용은 거의 완벽하다.
고구려실의 강서대묘모형·쌍영총고분벽화 (말탄 사람 그림) 등은 지금은 가 볼수 없는 두고 온 산하에 있는 것들이어서 더욱 감회가 깊다. 특히 말탄 사람 그림은 작지만 대단히 귀한 보배가 되는 그림이다.
백제실은 역시 1971년7월에 발굴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무령왕릉 출토품이 대부분이다.갖가지 문양으로 장식된 여러가지 전과 기와·독널(옹관)등도 한반도의 서남쪽에서 6백여년동안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백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2층의 북쪽에 자리잡은 제7실인 기획전시실 (2)에는 유명한 『몽유도원도」가 꿈속에서 아른거리는 것처럼 서쪽 진열장안에 있었다. 5백39년전인 1447년 4월에 안견에 의하여 단 사흘만에 그려진 이 「몽유도원도」는 평생에 한번 보기 어려운 명화여서 그 앞에서 발길을 옮기기가 아쉬웠다.
제9·10 전시실인 신라실(1·2) . 역시 금빛으로 찬란한 방이다. 30여쌍이나 되는 각양각색의 금귀걸이·드리개·왕관등이 눈을 끈다. 그러나 말탄 사람토기·유리병·유리잔·토우· 뼈항아리· 쇠판갑옷· 말갖춤 (마구) 등을 결코 지나칠수 없다.
신라실(2,통일신라)의 중앙에 자리잡은 황룡사 모형은 신라시대의 목조건축양식과 가람배치법등을 연구하는데 꼭 있어야 할 것들이어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시간도 더 걸려 2층 전시실을 둘러보고는 3층으로 올라갔다. 아름답게 꾸민 대리석계단을 밟으며 올라가면서 꼭 1년전인 지난해 여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의 대리석 계단을 오르내리던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우리는 언제 이렇게 아름답고 큰 박물관을 갖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너무나 행복한 것이다.
제3실이 되는 고려자기실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꾸민 방이다. 특히 고려청자 개요와 고려청자 요지 분포도의 설명문과 사진등을 읽어보면 청자공부는 졸업할수 있다고 할만큼 잘 되어있다.
분청사기실과 조선백자실에 서 서 당당한 모습의 조선시대 그릇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미술품의 특징과 양식을 확연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 그릇들에 넘치는 생명력· 자연스러움· 세부기교에 관한 무관심 등 한국미술의 3가지 특징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4층에는 8개 전시실이 있다.
서화실에는 조선시대 3대명화 (『몽유도원도』『금강전도』『세한도』)중 2점이나 있었다. 호암미술관 소장품인 겸재 정선이 1734년 (58세때)에 그린 『금강전도』는 주제·구도·화법등 모든 회화적인 요건이 탁월한 국보다. 완당 김정희가 1844년 (58세때)에 제주도 귀양살이중 그린 『세한도』는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문인의 고상한 마음이 잘 표츌된 국보다. 10여년만에 일반에 잠시 공개되는 것이니 기회를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4층의 마지막 방은 역사자료실이다. 『대동여지도』와 『한성도』등 각종지도, 각양각색의활자와 고서·탁본·진흥왕순수비 (서울 비봉에 있던)· 석관· 정조대왕의 능행모습을 그린 『화성친행도』· 안압지 모형등이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4시간동안 쉬지 않고 우리의 문학유산을 관람한 후 나의 다리는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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