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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파키스탄「복수의 천사」부토가 태풍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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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슬라마바드=이규진 특파원】카라치 중앙형무소 독방 101호실. 가냘픈 여성의 몸으로 파키스탄 민주화의 기수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베나지르·부토」여사(33)가 감금 되어 있다.
일체의 면회와 사식제공이 금지된 채 4펑 정도의 공간 속에서『이샬라』(알라신의 뜻으로)를 외치면서 투쟁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복수의 천사』. 지난 4월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했을 때 그녀에게 붙여진 대명사다.
비록 지난 1주일 동안의 반정부시위는 일단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의 투옥은 여자의 몸으로 고난을 당한다는 점에서 파키스탄 국민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고 야당세력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의 마음속에 더욱 확고하게 해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투옥은 민주화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에 틀림없다.
「부토」여사가 투옥된 가운데 1주일간 계속된 파키스탄사태는 22일 성지순례를 마친「지아」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면서 새로운 고비를 맞고 있다.「지아」대통령이 귀국 후 이번 사태의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 주목되고 있다.
문제는 야당세력들이「지아」대통령의 하야와 조기총선 요구를 계속할 뜻임을 밝히고 있어 3주 후「부토」여사 석방 뒤 파키스탄정국의 행방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당신들은 자유를 원하는가』『당신들은 진심으로 민주주의를 바라는가』『당신들은 진정 「지아」대통령의 하야를 고대하는 가』-.
지난 4월10일. 파키스탄독립의 얼이 서려 있는 라호르 시 파키스탄 메모리얼 파크 모치게이트 앞에서 1백만 군중을 향해「부토」여사가 던진 물음이다.
2년간의 유럽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한「부토」여사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민주화를 향한「검은 물결」을 일으켰다.
「블랙·데이」.파키스탄 국민들은 9년 전「지아·울-하크」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줄피카르·알리·부토」민간정부를 무너뜨린 7월5일을 이렇게 부른다.
지난 7월5일 블랙데이에는 파키스탄 전국에 걸쳐 10만이 넘는「부토」여사 추종자들이 검은 완장을 두르고 검은 깃발의 조기를 든 채『「지아」타도』를 외치며 대대적인 반정부시위를 벌였었다.「부토」여사가 이「검은 물결」의 앞장에 서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2월 마닐라에서 물결쳤던「노란 물결」이 필리핀민주화의「희망」을 상징했던 것이라면 파키스탄에서의「검은 물결」은 민주주의 몰락에 대한「애도」를 뜻한다.『파키스탄의 「코라손」』으로 불리는 33세의 미모의 처녀「부토」여사는「코라손·아키노」필리핀 대통령이 그럴 듯이 부유한 지주 집안 출신.
대지주였던 할아버지「샤나와즌」는 이슬람교 정치단체의 지도자로 파키스탄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투사였다.
그녀는 16세 때 미국 보스톤시 근처의 명문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유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철학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창 시절 때만 해도 정치는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프랑스 배우「알랑·들롱」을 좋아했던 그녀는『학업을 마지고 고국에 돌아올 때까지 만 해도 나는 정치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정치는 나쁜 것이고 두려운 것이며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평범한 여자였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돌아와 아버지「부토」전 수상이 집권당시 정적암살혐의로 79년 4월 처형되고서「부토」여사의 운명은 바뀌었다.
81년2월 야당세력이 연합해 민주회복운동(MRD)을 창설하자 이때부터「부토」여사는 정치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달 뒤 오빠「무르타자」와 남동생「샤나와즌 가 조직한「알·줄피카르」라는 비밀테러단체가 파키스탄 여객기를 시리아로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 그녀는 투옥되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3년간의 감옥생활 끝에 84년 2월 신병치료를 위해 유럽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했다.
지난4월 2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그녀는 거침없이『나는 혁명을 원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녀가 일단 반「지아」정권의 상징으로 부각은 됐지만 여자인데 다가 정치적 경륜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아버지「부토」의 명예를 자신의 권력추구에만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자신이 당수로 있는 PPP자체 내에서 나오고 있다.
카라치 공항에서 만난 식품회사를 운영한다는「모하메드·압둘·카말」씨는『귀국 후 처음 얼마동안 그녀의 인기는 결정에 달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면 한마디로「부토」여사가 국민들에게 약속은 무수히 많이 하고 있지만 보여준 것이 없다는 것(more promises less performances)이다.
사실「부토」여사는 뚜렷한 정강정책 하나 내놓은 것이 없다. 그녀에게 정책목표를 물어 보면『우리의 믿음은 이슬람, 우리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우리의 경제는 사회주의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라고 아버지「부토」전 수상이 만들어 놓은 PPP의 정강 정책을 되뇐다.
이러한 점에서「부토」여사는 아직은 아버지「부토」의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마추어 정치가에 불과, 필리핀의「코라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수천만 파키스탄 젊은이들이 그녀를 따르고 있고 아직은 그녀에게 시간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난 14일 투옥되기 직전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부토」여사(33).「지아」정부의 타도와 민주화 투쟁을 외치는 그녀의 앞길은 아직 가시밭 길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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