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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의 경조사도 일일이 챙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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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시장을 파고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독특한 상 관습, 복잡한 유통구조, 까다로운 품질조건 등 각종 난관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 상반기 중 우리나라 수출이 전체적으로는 23%의 높은 신장률을 보였으면서도 대일 수출은 10·1%증가라는 저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일본시장개척이 어렵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리고 매년 20%이상씩 대일 수출을 늘려 온 기업들도 적지 않다.
21일 무역협회가 발간한 「대일 수출 성공사례집」을 통해 이들 업체의 성공포인트를 알아본다.

<시즌마다 옷차림 살펴>
대일 수출에 성공한 기업들의 가장 큰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일본시장의 특성과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데 주력했다는 점.
이를 위해 수시로 일본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일본시장에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았다.
스웨터를 일본에 수출하는 경남섬유(대표 허정도)는 일본인들의 디자인감각을 익히기 위해 스웨터 비 착용기인 여름을 제외하고는 봄·가을·겨울 시즌마다 관계자를 일본에 보내 도쿄·오사카 등 주요도시의 백화점·양판점등 도·소매상을 둘러보고 거리의 패션 경향을 면밀히 체크토록 해 이를 제품디자인에 반영했다.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75년 40만 달러에 불과하던 대일 수출이 80년대 들어 연평균 27%의 신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4백89만 달러를 수출했고 내년에는 1천만 달러의 대일 수출을 내다보고 있다.
고려제강(대표 홍종렬)의 경우를 보자. 진출가능성 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운영비를 들여가며 일본지사를 설치한 것은 지난 81년 일본업체들이 전체시장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와이어로프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유통구조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었다. 그 결과 얻어 낸 결론이 아무런 수출기반도 없는 고려제강으로서는 중간 딜러 보다는 실수요자와 직접 부닥쳐야 한다는 것.
이러한 판단이 적중해 진출첫해 24만8천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이 지난해에는 5백20만 달러로 4년 동안 무려 20배가 신장했다.

<꾸준히 거래를 유지>
바이어와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이룩하고 까다로운 주문도 마다하지 않고 소 화하는 등 바이어관리를 철저히 했다는 점도 대일 수출 성공업체들의 공통점이다.
「스트리트 라이프」라는 브랜드로 혁제 의류·골프장갑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 미래무역 (대표 정건택)은 바이어와의 돈독한 인간관계로 대일 수출에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 거래는 2∼3년 후부터 한다는 느긋한 생각으로 친구와 같은 교분을 맺기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경조사가 발생하면 직접 오가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면서 미래무역의 대일 수출은 눈에 띄게 늘었다.
4명의 고정바이어만으로 지난해 81만 달러 어치의 혁 제품을 일본에 수출.
미국바이어들에 비해 가격과 물량은 물론 거래조건도 까다로운 일본바이어의 주문에 다른 봉제완구업체들이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일본 바이어들과 꾸준히 거래를 유지해 성공한 케이스가 위고상사(대표 김익찬).
여기서 싹트기 시작한 신뢰가 바탕이 돼 오늘날 우리나라 제1의 대일 봉제 완구 수출업체로 발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 봉제완구 총 수출(9백16만 달러)의 45%인4백11만 달러가 위고상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

<최고급품으로 인식>
고가화 정책으로 일본시장을 공략한 업체들도 적지 않다.
고급스웨터 수출업체인(주)모라도(대표 김혜자)는 출발부터 임가공 형태의 저가품생산을 철저히 배격하고, 모헤어·실크·캐시미어 등 고급소재와 첨단 디자인을 결합시킨 고가품위주의 수출을 시작했다. 그 결과 중공·인도 등의 싸구려제품과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안정된 거래가 가능했다. 스웨터 한 장의 수출가격이 25∼35달러나 되는데도 고급 부티크나 일류백화점에서 모라도 제품은 일본여성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수출실적 1백97만 달러 중 92·4%인 1백82만 달러가 대일 수출.
일본의 대머리 남성 6백만 명중 가발을 쓰는 사람은 40만 명도 채 안 된다는 사실에 착안, 다른 가발업체와는 달리 대일 진출에 주력해 온 고신무역(대표 고완균)도 고가 품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
중공산 가발이 개당 25∼30달러의 저가로 공략해 오는 데도 고 신은 개당 70달러의 고가정책을 유지해 왔다. 물론 그 만큼 소재·디자인·품질 등에 신경을 썼다. 이 제품은 일본소비자들에게 최고급품으로 완전히 인식되어 일본바이어의「아드란슨 브랜드를 달고 15만∼40만 엔에 팔리고 있다.

<3단계의 품질검사>
어느 나라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본소비자들은 품질에 관해 대단히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만큼 철저한 품질관리와 검사를 생명으로 하는 기업이 대일 수출에 성공하는 것은 망연하다.
수출의 1백%가 대일 수출인 신사용 양말 메이커 (주)천마(대표 김상호)가 대일 수출을 시작한 것은 지난 72년. 처음부터 품질관리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장이 직접전공정을 수시로 점검하는 한편 편직 단계·중간생산단계·최종단계로 3단계 품질검사를 실시해 왔다. 그 결과 15년간의 대일 거래에서 단 한 건의 클레임도 없었다는 신화적인 기록을 남기게 됐다. 천마의 대일 수출은 매년 30%이상씩 신장, 지난해 1백53만 달러를 수출했다.
「마무리 꼼꼼」을 사훈으로 정하고 품질관리에 완벽을 기한 태림모피(대표 이종범)도 작년 수출실적 6백만 달러 중 5백50만 달러가 대일 수출이다.
20년의 모피생산으로 가공기술은 많이 축적됐지만 끝마무리 불량으로 불량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마무리 꼼꼼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모피제품 한 벌 생산에 필요한 모든 원·부자재를 한 바구니에 담아 운반하는 「바스킷시스템」을 도입, 불량률을 극소화했다.
그 결과 꼼꼼하고 세심한 일본 소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성공했다는 것.

<소량다품종도 수용>
이밖에 대일 수출 성공의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노력을 강화해서 성공한 곳도 있고, 소량다품종 수용태세확립으로 일어선 회사도 있으며, 일본소비자에 대한 제품신뢰도를 높여 성공한 기업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성공기업에 공통되는 특징은 집념과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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