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바이오·IT 융합 8개 프라임 학과로 실무형 인재 키울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민상기 건국대 총장

기사 이미지

26일 건국대 민상기 총장은 “한국 대학이 사회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젠 대학 스스로 교육과정을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립대의 등록금은 2011년에 멈춰 있다. 이후 등록금 인상을 실행한 대학은 없다. 2021년이면 대학 입학정원이 현재보다 16만명 줄어든다. 등록금 시계는 그 때도 아마 2011년에 서 있을 것이다. 사립대는 정부 지원금을 따내야 산다. 교육부의 요구에 맞춰 입학정원을 줄이고, 새로운 학부나 학과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이 재정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이화여대처럼 학내 분규도 겪는다. 건국대 역시 같은 상황을 겪었다. 이달 초 취임한 민상기(61) 총장은 프라임사업(산업 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 사업책임자(단장)였다. 이 사업은 교육부가 지금껏 대학에 지원했던 사업 중 사상 최대 규모다. 교수·학생을 설득해 학과 정원 500여 명을 이동시켰다. 결과는 3년 간 480억원 지원으로 돌아왔다. 건국대 재단은 그런 그를 이달 초 총장에 앉혔다.

‘4+1학년제’로 운영, 방학 땐 실험·실습

지난 21일 마감된 대입 수시모집에서 프라임사업 덕분으로 새로 생긴 신생 학과의 수시 경쟁률이 높게 나왔다.
“화장품공학과는 수시 경쟁률 38대 1을 기록했다. 이 학과는 프라임 사업으로 생긴 KU융합과학기술원에 있다. 바이오와 IT(정보통신)공학이 융합된 8개 프라임 학과 중 하나다. 프라임 학과 평균 경쟁률이 19.7대 1을 기록했다.”
화장품공학과 이름부터 특이하다.
“어느 대학에나 다 있는 뜬 구름 잡는 학과가 아니다. 화장품과 관련이 있는 바이오와 공학적 지식을 실무 위주로 가르친다. 현재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화장품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기사 이미지
프라임학과는 어떻게 가르치나.
“4년 학사과정과 1년 석사과정을 압축해 ‘4+1학년제’로 운영한다. 방학 중에도 전공 계절학기를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방학 중엔 실험이나 실습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4년 학부 과정만으로 산업계에 필요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기엔 한계가 있다.”
프라임학과에 대한 정부 지원은 3년이다. 그 이후엔 대학이 알아서 해야 하나.
“그렇다. 3년 간 정부지원을 받아 뿌리를 내리고, 이후엔 대학이 더 투자해 결실을 거두라는 것이다. 얼마 전 교육부가 보낸 공문을 보면 향후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프라임이 다음 정부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3년 이후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명문학과로 자리잡게 할 것이다. 3년간 우수한 역량을 갖춘 교수를 적극 영입하고, 이들이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대학 본부도 기존 재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고, 추가로 정부 지원사업을 받을 것이다.”

토론하는 수업 확대, 전용 강의실도 마련

정부 재정지원을 떼어놓고 사립대의 현실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 거 같다.
“앞으로 어느 대학도 등록금 인상을 하기 어렵다. 등록금 인상은 사회적 합의 사안이 됐다. 그러니 대학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교육부가 가자는대로 갈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정책이 대학의 존립을 결정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교육부의 평가 잣대에 맞추다보면 대학이 획일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나. 대학에 대해 연구 중심·교육 중심 등 대학 별로 특성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 총장 입장에서 교육부 정책이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은 대학에 맡겨줬으면 한다. 교육부는 초·중·고교와 평생학습에 집중하고, 대학은 고등교육의 특성을 잘 아는 전담 기관에 맡기자는 것이다.”
어떤 기관이 있을까.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에서 독립된 과학재단이 대학 등 민간에 대해 지원을 한다.”
대학 스스로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이 하고 있는 연구가 과연 현재 우리 산업을 이끌고 있는 게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선제적으로 양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역시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이 사회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젠 대학 스스로 교육과정을 바꾸고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

학과 칸막이 낮춰 융합 … 교수 겸임제 도입

어떻게 혁신하려 하나.
“독일에서 대부분의 시험은 필기보다는 주로 구술 시험의 형태로 진행된다. 교수들의 질문은 ‘왜’로 귀결된다. 학생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을 정리하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여기에 접목한다. 수학과 물리도 구두로 시험을 봤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현재 우리 대학의 현실을 보자. 강의실의 자리 배치는 모두 교수를 바라보거나 학생 뒤통수를 보게 돼 있다. 토론식 수업은 서로 눈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구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교육의 혁신이다. 이를 위해 토론수업을 위한 전용 강의실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AI)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
“인문학적 상상력과 콘텐츠는 이제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됐다.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ICT) 역시 모든 학문의 기본이 돼야 한다.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는 학과로는 이젠 안 된다. 인문학과 소프트웨어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학과 문을 낮춰 융합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한 학과에 머물지 않고, 두 개 이상 학과에서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는 내부 겸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이화여대 분규 사례를 보더라도 학생 등 구성원과의 소통이 더 중요해졌다.
“프라임사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학생과의 소통이었다. 먼저 경청하고 이해를 구했다. 학생들이 학교가 하는 일을 공문을 통해 알게 하지 않게 했다.”

◆민상기 총장

독일에서 공부한 식품공학자. 건국대 축산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가 슈투트가르트 호헨하임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받았다. 바이오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강의하는 과목 중 하나는 반드시 시험을 구술시험으로 치렀다. 30분 동안 던지는 질문을 버텨내는 학생에게 A학점을 줬다고 한다. 교수와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55년 경기도 양평 출생.

만난 사람=강홍준 사회1부장, 사진=우상조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