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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아키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노란 물결」이 필리핀을 뒤덮더니 요즘 파키스탄에는「검은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제2의 아키노」로 불리는 33세 미혼·미모의 여성지도자「부토」의 반정부 시위 물결.
「지아·울-하크」정권은 파키스탄의 독립기념일인 14일 그 물결을 보다못해「부토」를 체포, 카라치 교도소에 수감했다.
「베나지르·부토」는「지아」에 의해 79년 처형된 고「줄피카르·알리·부토」수상의 딸이다.
물론 그녀는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정치일선에 나선 것은 아니다. 그녀는 원래 뼈대있는 가문에서 자랐다.
신도지방의 대지주였던 할아버지「샤나와즈」는 이슬람교 정치단체의 지도자로 파키스탄 독립운동에도 참여한 투사. 그녀의 어머니「너스라트」여사는 이란 무역상의 딸이다.「핑키」라는 애칭을 가졌던 소녀시절「부토」여사는 영국인 가정교사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
10대때 파키스탄내의 카톨릭 계 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가장 흥미를 가진 것은 「알렉산더」대왕 등 역사적 인물의 전기를 읽는 것이었다.
16세때 그녀는 미국의 명문 레드클리프 여대에 유학했지만 방글라데시의 독립, 파키스탄·인도 전쟁 등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느 날 한 교수가「전쟁과 모럴」을 강의하면서『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의 민족자결권을 압살, 그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고하자「부토」양은 2백 명의 수강생 속에서 분연히 일어나 일장웅변을 토했다.
언제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그녀의 이 열변에 학우들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이다.
그녀가 영국 옥스퍼드로 옮겨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할 때는 학교생활을 즐겨 변론 그룹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미인이면서 머리도 좋은 그녀는 댄스파티 같은데 초대를 받으면 『이슬람 여성은 외국남성과 춤을 추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77년 약8년간의 미국·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의 성장한 모습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부토」수상은 비서 역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꿈은 그녀가 귀국한 며칠 후 당시「지아」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산산 히 깨져 버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처형되는 날도 어머니와 함께 집에 연금 돼 있어야만 했다.
「부토」여사의 정치적 에너지는 그런 피에 맺힌 원한에서 솟는 것 같다. 감옥쯤은 오히려 기다리던 즐거운 시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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