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챌린저호 사고는 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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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사고와 이번 독립기념관 화재사고는 모두 천재아닌 인재였다.
사고규모를 보면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월등히 큰 것이 사실이나 철의 장막안의 일이어서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사고내용·처리과정이 비교적 소상히 밝혀진 챌린저호 폭발사고와 우리의 독립기념관 화재사고를 비교해 보게된다.
챌린저호와 독립기념관은 각각 두 나라의 명예와 자부심이 걸린 사업이었다. 결코 실수해서는 안될 중대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여 이로 인한 충격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고가 난 뒤의 처리과정을 보면 다수민족인 미국은 단일민족같고, 단일민족인 한국은 다수민족의 집합체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사고를 보는 국민의 여론이 그렇고 당국의 수습과정, 매스컴의 보도태도도 그렇다. 챌린저호 사고의 경우 그 엄청난 일을 당했으면서도 사계권위자들로 원인규명을 위한 조치는 철저히 취했을 망정 어느 누구를 처벌하자는 여론은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미국정부도, 야당도, 매스컴도 한결같이 챌린저호의 도전을 찬양했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님을 강조하고 7명 승무원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우주개발을 향한 미국의 의지를 고조시키는 팝송이 나왔다고 들었다. 위대한 국민이요, 존경할 국민이라고 보겠다.
실제로 어느 누구를 형사처벌하거나 구속했다는 이야기도 나온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좀 다름을 느낀다. 많은 여론이나 보도가 『처벌하라』 『골탕먹이자』는 식으로 흘러가고 당국도 완전한 사고원인도 밝혀지기 전에 허약한 전공을 범인으로 몰고가더니 마침내 구속까지 되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챌린저호같은 사고가 났다면 더 많은 사람이 구속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사계의 권위자들을 모시고 대형사고를 무난히 수습한 선례가 있다. 72년4월15일 호남비료 나주공장에서 요소합성탑폭발사고가 났다. 필자는 당시 충주비료(1비) 기술이사였다. 나주비료는 동업자이나 경쟁회사이었지만 같은 국영기업체여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서울대화공과 최웅교수를 단장으로 당시 본인과 KIST와 4개 비료회사 기술진들을 단원으로 조사단을 구성, 현장으로 달려갔다.
경찰에서는 이미 현장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발생 30여시간이 넘도록 누구도 현장출입을 금지시킨채 과학수사연구소 직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주비료공장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피의자취급을 당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최단장은 국가재산이 더이상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현장보존에 필요한 사진을 찍고 즉시 복구작업을 지시했다.
그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고원인을 조사한 결과, 보온재부착용지주 용접이 잘못돼 균열이 생겨 폭발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나머지 반응탑에서도 균열이 생긴 것이 발견돼 긴급보수, 6개월만에 완전 복구했다.
독립기념관화재사건을 보면 건설공사허가도 받기 1년전에 착공한 것으로 보아 착공허가에 필요한 조사·설계 등도 미비했을 것이고 설계변경도 많았다하니 서두른 것이 사고원인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건설에 경험이 적은 관청이 사업주가 되었으면 경험이 많은 건축전문가를 건설본부장으로 고용하여 본부장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건설이 진행됐으면 사고원인은 많이 감소 됐으리라고 믿는다.
사고의 잘잘못은 따져야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게 대책을 세워야한다. 그러나 고의적인 잘못이 아니고 만일 실수나 서두르다가 생긴 사고라면 관대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미숙이나 실수에 의한 사고마다 구속한다든지,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엄하게 다룬다면 차후 이러한 실수에 의한 사고를 당했을 때 당사자들이 사실을 부인하여 사고조사에 대단히 곤란함을 받게될 것이다.
챌린저호 사고때 우주선제조회사(THICHOL사)는 이미 1월의 추운 날씨에는 기온이 낮아 연결 오링부에서 연료가 누설될 수 있다고 지적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레이건」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일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1월28일 발사했다고 지적할 따름이지 그 정치적 택일을 혼합민족인 미국인들이 비난하거나 문책하는 글은 볼 수 없었다.
온 국민의 성금으로 추진된 독립기념관의 이번 화재는 누구나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 한이없다. 그러나 사건을 처리하는 당국과 보도하는 매스컴, 그리고 관심을 갖는 단일민족인 우리 국민들은 보다 어른스럽게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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