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분산과 거리 먼 수상중심 제|양건<한양대법대 교수·헌법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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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의 개헌안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확정적으로 조문화되지 않은 단계이지만, 지금껏 보도된 개헌안요강만으로도 적지 않이 뜻밖이라는 놀라움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얼마 전까지 민정당은 지리한 느낌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국적으로 개헌간담회를 펼치는 가운데 민 의의 소재는「권력분산」에 있음을 강조했고, 이러한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순수한 내각책임제」를 택할 것임을 누차 시사해 왔다. 그러나 보도된 요강을 보면 이를 「권력분산」이라고도, 「순수한 내각책임제」라고도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내각책임제 또는 의원내각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행정부와 의회의 성립과 존속이 서로 상대방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의회의 내각불신임 권에 대응하여 내각의 의회해산 권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민정당의 개헌안은 분명 내각책임제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표된 요강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그것이 내각책임제의 한 변동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의회에 의한 간선의 대통령중심제와 실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됨은 무엇 때문인가. 그 까닭은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내각」중심이 아니라「수상」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요강에 따르면 내각이 아닌 수상이 군 통수권·국민투표회부 권·외교권·내각지휘권·각료임명권·공무원임명권·법률안제출권 등 거의 모든 실질적 통치권과 행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내각책임제의 본령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내각책임제는 말 그대로 내각이 집행권의 주체를 이루는 제도이며, 내각이란 다름 아닌 합의체기관이다. 대통령과 같은 독립기관이 아닌 합의기관이 집행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권력분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적으로는 수상은 어디까지나「동료중의 선임자」에 불과했던 것이며, 다만 행정권강화의 추세와 함께「내각의 수장」의 위치로 격상된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제도자체의 변혁보다는 주로 정당정치의 현실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강에 나타난 것은 이미 제도 자체에서부터 수상중심으로 못박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둘째, 내각 아닌 수상에게 집행권이 부여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상에게 주어진 권한들의 내용이 통상의 의원내각제의 내각, 또는 수상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막강한 통치권들이라는 점이다.
군 통수권을 수상 한사람에게 전유시키는 것은 내각책임제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또한 과거의 긴급조치권과 사실상 다름없다고 보여지는 비상조치 권, 그리고 중요정책에 관한 국민투표회부 권과 같은 권한들은 고전적 대통령제의 대통령에게도 인정되지 않는 예의적 통치권이며, 현행 우리 헌법이나 이른바 이원정부 제 하에서의 민선 대통령에게 국가적 위기극복을 위해 특별히 인정되는 예를 볼 수 있는 정도다.
민선이 아닌 의회선출의 수상에게「통치」차원의 국가적 권력을 실질적으로 부여함은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
셋째, 국회가 행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견제권한이 극히 억제되고 있는 점이다.
우선, 수상이 국회를 해산하고자 할 경우 국회가 재적과반수로 다른 수상을 선출하는 때에는 국회해산 권이 소멸되는 한편으로, 국회가 내각불신임 권을 행사하려는 경우에는 불신임안 처리에 앞서 반드시 후임 수상을 먼저 선출하도록 하였다.
서독헌법에서 규정하는 이른바「건설적 불신임 제」다. 뿐만 아니라 국회임기 개시 일부터 2년 이내에 국회해산 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과 상응하여, 수상 선출 일로부터 2년 이내에는 국회가 내각불신임 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것은 사실상의 준 임기 제 정부를 가능케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중적 장치들은 내각책임제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정국불안의 방지라는 면에서 일단 그 취지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 하에서의 정국안정 여부는 이같은 제도적 억제장치의 존부 보다는 근본적으로 정당정치의 실제 여하에 달려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정당정치의 운영여하에 따라서 내각이 불안정할 수 있는가 하면, 반면 강한 내각 하에 약한 의회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국정감사권을 인정치 않고 있는 점이 보다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대략 지적해 본 것처럼 민정당의 개헌안요강은 다시 몇 가지 수정을 가했다지만 여전히「뜻밖의 별난」내각책임제 정부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논의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각책임제를 보다 이상적인 제도로서 수긍하면서도 현시점에서 그 선택을 주저했던 것은 그 전제조건들이 너무 미비 되어 있다는 현실판단 때문으로 보이는데,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각책임제를 취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독재정치의 우려를 제1의 우선적 고려사항으로 삼는 한, 역시 상대적으로 내각책임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느냐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각책임제를 취한다고 하면서 이처럼 내각보다는 수상, 책임보다는 책임방어에 치중함으로써 도리어「수상독재화」의 우려마저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납득키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의 집권만을 전제한 개헌안을 고집한다면 그것이 과연 국민이 바라는 개헌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거꾸로 집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아래 개헌안이 만들어질 때, 그것이 국민으로서는 가장 바람직스런 개헌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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