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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화재 취재기자 현지방담|충격비해 수사폭 좁은 느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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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립기념관 화재 사건을 취재하면서 시종 느끼는 것은 이 사건이 졸속·겉치레·무계획· 편의주의·탁상주의등 온갖 부정적 요소를 다 지닌 채 터졌다는 점입니다. 객관적 사실만을 추적해야할 기자의 입장이면서도 흥분도 했고 분통도 터뜨렸으니까요.
-사건발생 닷새만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사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 될 수 있는 대로 수사폭을 좁히려는 느낌이어서 뒷맛이 씁쓰레합니다.
-7일 검찰과 경찰이 화재의 직접원인이 됐던 전기공사를 맡은 현대전업관련자 6명을 구속하면서『수사는 화인확인과 범인검거가 주목적이었다』고 거듭 강조,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을 뜻을 시사했지요.
-하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국민의 질책과 비난이 빗발쳐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에 이어 검찰과 경찰은 또 한차례 곤욕을 치를 것 같아요.
-당초 화재직후 『책임자들을 엄중문책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대검에서 철저규명을 발표하고 박종철대전지검장과 강탁 대검형사 l과장까지 투입해 수사범위가 넓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수사대상도 좁혀지고 결국 전공6명을 구속하는 것을 고비로 열기가 식어가는 기미가 뚜렷해졌어요.
검찰은 앞으로의 수사방향은 건축부조리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독립기념관의 원청업체인 대림산업 공사에 참여한 하청업체가 1백80여개나 되는데 부조리 부분도 현대전업과 대림산업 전기관계자에 한정된 것이어서 국민의 의구심과 분노를 풀어주기에는 미흡한 것이지요.
-전공6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까지 검찰관계자들이 10시간30분씩이나 마라톤회의를 한 것은 사건이 아닌 사고수사에서는 보기드문일이지요. 검찰에서 과전압현상으로 전구가 폭발하고 과열되는 것을 확인하기위해 한전 천안지점에서 전구2개를 실험, 확인을 하고서야 영장을 신청했으니까요.
-7일 0시20분쯤 첫번째 전구가 『펑』하는 폭음을 내며 폭발하자 가슴을 죄며 지켜보던 검사와 수사경찰관들은 일제히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는군요.
-그나마 경찰이 원청·하청업자간의 금품수수 부조리를 가려낸 것은 수사도중 우연히 걸려든 수확이었지요. 화재직후부터 천안 경찰서에 연행돼 보호실에서 지내던 대림산업 전기계장 김영률씨(32)가 면회온 동료직원에게 『책상 서랍속에 있는 예금통장을 없애라』는 쪽지를 건네주다 옆에 있던 형사에게 적발돼 들통이 났읍니다.
-기념관건설공사를 감독한 관계부처가 법규대로 소방시설을 했다면 이같은 참화를 막을수 있었지요.
-내무부 소방당국은 작년5월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와 문공부에 독립기념관 화재예방을 위한 소방대책을 갖출 것과 공사장에 소방파출소를 설치할 것등을 요청한 공문을 두차례나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무부는 내무부대로 공문만 보냈으면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소방시설 확보를 철저히 다그치지 않았고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는 내무부 요청을 무시, 공문에 대한 회신은 물론 가연성 자재를 사용하면서도 소방시설 시공땐 관할 천안소방서와 사전협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소방시설들에 무감각한 것이 그뿐만이 아니라는 단적인 예가 또하나 있었지요.
-화재현장 합동검증에서 비로소 밝혀진 것인데 15층높이의 독립기념관 소방설비가 고작 5층건물 기준으로 시공됐으며 4층 높이인 유물전시관에는 할론가스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한마디로 높이 10m의 1층을 단순히 1층으로 계산한 무신경이 통했더군요.
-또 최신 방화시설인 스프링 쿨러와 할론가스 설비가 동시에 갖추어져 있는 곳은 본관 관리동 지하1층과 제1전시관 지하1층등 두곳에 불과하고 할론가스설비가 갖추어진 곳은 본관 관리동1층·연구동 지하1층등이며 나머지 건물엔 옥내소화전만 설치돼 있었다는군요.
-이 때문에 15m이상 높이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방화작업이 이뤄질수 없다는 것이 소방전문가들 얘기였어요.
-경찰들이 4차례에 걸쳐 수정발표한 화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문점이 많이 남아있다고 봐야겠어요.
-검찰·경찰이 최종결론으로 과전압에 의한 고열현상으로 결론을 지었지만 화인이 발표될 때마다 반론이 제기돼 그동안 모의실험까지 하는등 고민한 것도 사실이예요.
-모든 사람이 궁금히 여기는 것은 어떻게 발화해서 삽시간에 큰불로 번질수 있었느냐였어요.
-이대목에 관해서는 많은 화재전문가들이 지붕의 구리가 집열판 노릇을 해서 품은열로 인한 FRP나 루핑등의 휘발성가스가 천장꼭대기에 모여 있다가 과전압으로 전구가 섬광을 낼때 폭발한 것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공사를 맡은 대림산업은 공기단축에 따른 부담도 있었겠지만 국민의 성원을 악용한 대목들이 눈에 띄어요. 83년8월15일 기공식을 갖고 1년간이나 무허가로 공사를 진척했어요. 관할 천원군에서 오히려 『제발 건축허가서를 제출해달라』고 사정을 해 허가를 내주었어요.
-국민들중에는 국민의 혼이 담긴 독립기년관을 실적행정을 위해 공기를 단축한 것이나 예산축소를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잘못을 범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고 여론이 비등해요. 불이 난 본관건물외에 귀중한 유물이 전시될 전시관의 방화시설을 일반건물수준에 맞춰 할론방화가스설비등 최신시설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예산절약이 아니라 예산집행의 횡포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읍니다.
-화인수사과정에서 검찰이나 경찰의 기자에 대한 태도는 관의 국민에 대한 경시를 보는 것 같았어요.
6일 현장검증에서 송인준천안지청 부장검사가 기자의 접근을 막으며 『내가 초임검사때 J일보 L기자를 구속했다』고 막말을 한것이나 전공 이평식씨가 결선부분을 부인하자 배전판현장검증을 하면서 전경까지 배치해 기자들의 취재를 막은 것은 공개적으로 실체를 밝히는것보다는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해답만 던져주면 된다는 발상이 아니겠습니다.
-지난4일 화재당일 전공 김종우씨(26)등이 야간작업을 하다 사고를 낸 것은 5일로 예정됐던 대림산업 이재준회장의 방문을 앞둔 끝마무리 작업때문이었다는 뒷소문이 들리더군요. 이 회장은 15일로 예정했던 개관을 앞두고 공사현장의 마무리작업을 독려하기위해 독립기념관에 들를 예정이었는데 대림산업측은 이를 위해 저녁늦게까지 하청회사 일꾼들에게 작업을 하도록 지시, 결국 야간작업을 하고 귀가하던 전공 김씨등이 배전실의 스위치를 잘못 조작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5일 이후부터 본사편집국에 쉴새없이 걸려오는 독자들의 전화만봐도 여론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부관계자들은 잘알아야 할겁니다. 『전공을 구속했다는데 이 사람들이 정말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까』『5∼6개월이면 복구한다느니, 복구비는 건설회사가 부담하느니하는 말로 국민의 가슴에 입은 상처가 치유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는 등의 토로는 국민이 받은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신문의 역할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목천=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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