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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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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31면

출장이나 휴가로 비행기를 타면서 서울 상공에 가까워질 때마다 한국에 돌아왔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 있다. 길쭉한 고층 아파트들이다. 일본에서는 무서워서 못 살 정도의 ‘호리호리한’ 구조를 보고 서울 부임 초에는 “지진이 나면 사람들은 두렵지 않을까”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나에게 지진은 무엇을 해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불가분의 ‘그림자’나 다름없다.


나는 도쿄 남쪽에 위치한 카나가와(神奈川)현에서 자랐다. 옛날부터 정기적으로 대지진이 발생한 지역이다. 초등학생 때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부터 벌써 60년이 지났다. 언제든지 또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도쿄 근처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이 늘 생활 속에 배어 있다. 조금 큰 흔들림이 일어날 때마다 “드디어 제2의 간토 대지진이 났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머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식탁 밑으로 들어가는 게 습관이 돼있다. 도쿄에서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게 두려워 일부러 4층 아파트를 선택할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지진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것이 정말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번 경주 지진 때 한국 정부가 발생 사실을 늑장 통보했다는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가 잘해도 지진 발생 직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까지는 일일이 알려줄 수 없는 일이고, 정말 큰 지진이 날 경우는 지시를 기다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랬듯이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나면 왜 정부 비판에만 집중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에 정통하고 동일본대지진을 현장에서 취재한 한 40대 한국 기자는 “일본 자연 재해는 대규모로 일어날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매뉴얼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태를 악화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또 도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30대 초반 남성은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일본 정부 대응은 문제가 많았는데 일본 사람은 너무 얌전하다.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얘기이기는 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진 발생 빈도는 한·일 간에 무려 1대 1500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하니 같은 씨름판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기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탓으로 돌려봤자 숨지게 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오누키 도모코마이니치 신문?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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