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과 싸우며 달렸다|한국여자육상의 "새별"…임춘애양의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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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배고픔을 잊기 위해 달렸다.
주저앉으면 발목을 꽉 잡을 것만 같은 병마의 추격을 뿌리쳐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필사의 질주, 소녀의 가냘픈 두 다리가 마침내 한국육상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여자육상의 떠오르는 새별, 한국판 「졸라·버드」임춘애양(17·성남성보여상2년).
불모의 여자육상 트랙에 홀연히 나타나 달릴 때마다, 대회때마다 한국기록을 경신하는 쾌주가 침체한 한국육상에 활기와 희망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한달앞 아시안게임서의 아주제패, 나아가 세계제패의 기대를 모은다.
「1백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천부의 재목」-. 그러나 그녀의 오늘은 그 재능조차도 묻어버릴뻔한 가난, 가난이 가져다준 병마와 한시도 쉬임없는 싸움을 집념과 노력으로 이겨낸 「인간승리」의 경주였다. 『먹고 뛰면 힘이 들기전에 기록부터 오르는데 안먹고 뛰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록이 안 올라요. 우유라도 맘껏먹고 뛰었으면 좋겠어요.』
열일곱해를 사는동안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먹고 자란 소녀의 절실한 고백이다.
지난6월 전국체전 3천m에서 한국신기록(9분21초69)을 세우고 1천6백m계주와 10km단축마라톤까지 휩쓸어 3관왕을 차지했던 임양은 한달만인 27일의 국가대표 최종평가전을 겸한 비호기 대회에서는 1천5백m를 4분19초85로 마크, 한국최고기록(4분24초99)을 무려 5초14나 단축했다.
『스타트때 스피드만 보강하면 3천m의 9분15초대는 자신있어요. 맨발로라도 뒤어 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을 목에 걸겠어요.』
국교3학년때부터 임양을 지도해온 김번일 코치(46)는 그러나 『훈련보다 위장병 치료가 급선무』라고 걱정했다.
임양이 코치 김씨에게 발탁돼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국교3학년때인 77년.
천부적인 재질은 김코치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바탕으로 빛을 내기 시작, 소년체전 6백m 3위(국교6년), 전국중·고 8백m1위(중2년), 전국체전1천5백m 1위(고1년)등 일취월장 해온 끝에 이제 한국여자육상의 「대표선수」로 떠오른 것이다.
기록경신의 달리기 10년은 그러나 허기와 질병과의 경주.
운동을 시작한 이듬해 공사판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가 간경화증으로 숨지면서 그렇잖아도 궁핍하던 집안살림은 「라면 1개로 하루를 때우는」극심한 가난속에 빠져들었다.
어머니 최말자씨(46)는 노모(74)와 임양등 2남2녀를 이끌고 성남의 달동네인 현재의 은행동 무허가 움막 삭월세방을 찾았고 식당일등 막일을 닥치는 대로 했으나 6식구의 하루끼니가 늘 문제였다.
현재 임양 가족은 2백만원짜리 전세집에서 어머니 최씨가 시내 삼양전자구내식당 종업원으로 일해 벌어오는 한달 15만원의 월급으로 산다.
언니(19)는 올봄 여고를 졸업, 취직자리를 찾고있고 임양과 쌍동이인 오빠(고2년)와 남동생(중3년)은 장학금을 받는 모범생.
임양은 영양실조상태에서의 고된 운동으로 만성위염에 만성빈혈에 시달리고 있다. 「밥먹고 물만 마셔도 토하는」위장병이 심하다. 단칸방 부엌 연탄가스로 인한 만성가스중독 증세까지 겹쳐있는 상태.
『가난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운동에 지지말라』던 아버지의 유언. 1년에 몇개월씩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끌어온 김코치, 도시락까지 싸다주며 응원해주는 친구들은 임양으로 하여금 역경을 견디게 한 힘.
임양은 현재 1백63cm키에 몸무게 43kg.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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