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특」가동 위한 길 닦기 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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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당 대표들이 개별 연쇄회담과 총장·총무·정책의장을 합석시킨 회담을 갖는 것은 당면 현안에 대한 어떤 결론이나 절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장 30일 첫 모임을 갖는 국회개헌특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정지작업과, 각종 현안들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서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성격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제기될 현안으로는 헌특 운영문제 말고도 구속자석방문제, 사면·복권문제, 부천서 사건 및 명동집회 유산사태, 의원 기소문제 등이 있고 이들 문제를 다룰 국회상위소집문제 등이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런 현안들에 대해서는 야당 측이 해결을 촉구하고 여당 측으로서는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짐하는 선에서 논의가 오고 갈 전망이지만, 그 보다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대표들간의 내밀한 얘기가 무엇일지에 오히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당의 개헌골격내용, 후계자부각문제, 여권내의 전체상황 등이 폭넓게 언급되고, 마찬가지로 야당의 속사정, 각 계파의 의도 등도 일단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밀한 의견교환과 함께 문제의 개헌협상을 어떤 방법과 채널로 어느 시기에 어떻게 추진하는게 좋겠다는 각자의 입장 전달이 오고 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이 29일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를 만나고 이어 국민당의 이만섭 총재와 연쇄회담을 갖는 것은 밖에 내놓을 협상성과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국회 개헌특위가동에 앞선 실질적인 「정지작업」을 위한 것이다.
여야 각 당은 특위구성문제를 사실상 매듭지은 지난 중순부터 이미 원내총무를 통해 국회의장에게 3당 대표회담의 필요성을 각기 제의했고, 이재형 의장도 주선할 용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정당 쪽에서는 야당 측과의 대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3당 대표가 함께 만나는 형식보다는 「실속 있는 대화」가 가능할 양자회담을 희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신민당이 지난 24일 헌 특위 명단을 제출하자 여·야에 정통한 인사가 왕복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 결국 민정당-신민당, 민정당-국민당간의 대표회동을 갖기로 25일 늦게 의견을 모았다는 것.
이에 앞서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공식·비공식경로를 통해 이 의장과 접촉, 구속자석방·의원기소문제 등에 정부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데 대해 섭섭함과 함께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했다는 후문이다.
회동 날짜가 29일로 된 것은 30일부터는 헌특이 가동되고, 31일부터는 노 대표가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
민정당은 야당 측이 제기해 올 각종 현안 중 구속자석방문제에 가장 부담을 느끼는 형편이지만 여전히 딱 부러지게 『언제까지 몇 명이 석방될 것』이란 언질은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석방된 수감자가 더 큰 사건을 만들어 구속자 수가 결과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석방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고충을 털어놨다.
다만 작년 말 의사당사태와 관련한 의원기소문제 같은 것은 선처를 약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천서 사건은 민정당의 큰짐이 되고 있는 셈인데 민정당의 입장은 이 창피한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따져 봐야 국가적 창피이니 공개논란은 가급적 줄이고 관련책임자는 엄격히 문책하는 것으로 끝냈으면 하는 쪽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회동의 원래 목적이 헌특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개헌협상에 관한 대야 희망사항 전달 같은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노 대표는 신민당 측이 국회특위에 개헌이외의 현안들을 끌어들이려 하는데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면서 인권문제 등은 특위가 아닌 상위에서 다루도록 하자는 협조요청을 간곡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노-이 회담에 대한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8일 상오 확대간부회의를 한데 이어 29일 상오 정무회의를 연다.
이 총재는『노 대표가 식사나 하자고 김동영 총무를 통해 연락해 왔더군』이라며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의원에게 최루탄을 쏘더니 이번엔 의원부인들까지 마구 다루니…』라며 지난번 명동사태와 27일 하오 성공회기도회사건을 들어 분노를 표시했다.
이 총재는 『나도 할 얘기가 많으니까 내 얘기나 하고 오는 거지』라고 말해 이번 대표회담에서는 「따져야 할 밀린 사건」들에 관해 얘기를 좀 하겠다는 자세다.
이 총재는 △구속자 석방문제 △사면·복권 △명동사건 △부천서 사건 △기소의원문제 등을 따져야 할 사항으로 예시.
이번 대표회담은 이 총재 쪽에서 좀더 적극성을 띤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헌특구성 합의이후 구속자석방문제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충분치 않은데서 당내는 물론 재야 측으로부터 큰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왜냐하면 이 총재로선 당내 많은 반발에도 불구 「헌특참여」라는 타협적 자세를 보여준데 대해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정부·여당이 이러한 자신의 입지를 충분히 고려해 줄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은 높다.
이 총재가 최근 이재형 국회의장을 방문했을 때도 『이럴 수가 있느냐』며 구속자 석방에 대한 여권의 미온적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이 총재는 특히 제헌절 특사가 없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할 무렵 몹시 당황해 하는 눈치였으며 실제 1명의 가석방도 없이 제헌절을 치르고 난 이후 다소 위축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원기소문제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이번 대표회담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는 신민당 인사들은 적은 형편이다.
이번 회동이 헌특가동의 분위기 조성용이란 것이 신민당 측의 인식인 것 같고, 다만 구속자석방문제에 대해 공개하긴 어려울지는 몰라도 다소의 진전된 약속이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눈치다.
그리고 명동사건 때 경찰이 최루탄을 직사해 부상자가 발생하게 한 일이나 의원부인들을 거칠게 다룬 일 등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유감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남진·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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