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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 지진 대응 못 믿겠다… 재난 대비책 새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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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주에서 지난 13일 규모 5.8의 강진에 이어 19일에도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했다. 13일 이후 발생한 400건 이상의 여진 중 가장 강력했다. 지진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은 계속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재난 컨트롤 센터로서 혼란을 잠재워야 할 국민안전처는 미숙한 대응을 반복해 신뢰를 잃고 있다. 여진 발생 뒤 홈페이지가 다운돼 2시간가량 먹통이 된 것은 물론 긴급재난문자도 늑장 발송했다. 긴급재난문자는 여진이 강타한 경주 지역엔 발생 5분 뒤와 8분 뒤 등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전달됐고 대부분의 주민이 지진동(動)을 분명하게 느꼈던 부산·울산·대구·경남 등 인근 지역엔 14분 뒤에야 도착했다. 이 정도 지연은 긴급하고 위급한 순간이라면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지진을 비롯한 긴급재해 상황이 벌어질 때 상황과 대피 요령을 파악하기 위해 국민이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접속하게 마련인 국민안전처 홈페이지가 먹통을 반복한 것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13일에도 홈페이지 먹통과 문자 지각 발송으로 국민 지탄을 자초한 국민안전처는 1주일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기강이 해이해진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국민안전처는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사고를 겪으면서 박근혜 정부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정부의 안전 관련 부서를 모아 신설한 조직이 아닌가. 국민을 안전한 나라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부처의 존재 이유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경주를 찾아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제 그 후속으로 재난 대비책을 한 차원 높일 차례다. 정부는 특히 지진과 관련한 재난 대비책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양산단층·울산단층 등 활성단층에서 가까운 경주 지역에서 잇따라 강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단층 주변에는 수많은 원전과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산업기지가 있다. 시급한 일은 이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단층을 대상으로 정밀 지질조사를 실시해 지진 취약 지역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이를 정보기술(IT) 및 빅데이터와 접목해 한국 지형에 맞는 지진 대응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재해 위험도가 큰 원전·고속철도·가스관·송유관·고층 건물·교량 등 재난 취약 시설의 안전 기준을 재검토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내진설계 확대에도 나서야 한다.

재난이 벌어지면 국민이 따를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공익광고와 사회교육 시스템을 통해 널리 알리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지진이 일어나면 진동과 동시에 국민에게 알리는 일본과 같은 실시간 재난 대응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건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런 수준의 재난 안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외 전문가를 총동원해 지진에 안전한 나라를 만들 방안을 촘촘하게 마련해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불안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